의대 2000명 증원, 주먹구구식 그럴줄 알았다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5.14 12:00 | 최종 수정 2024.05.14 19:35 의견 0

“2월 6일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 회의록에 따르면 참석자 23명 중 4명이 “굉장히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2018년 폐교한) 서남대 같은 학교를 20개 이상 만드는 것” 등의 발언을 하며 반대했다. 하지만 위원장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자들이 많이 기다린다”며 1시간 만에 회의를 끝내고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 또한 “5차 전문위가 열린 지난해 10월 17일에는 증원 규모를 제시한 위원 8명 중 6명이 1000명 또는 그 이하가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결국 공식 발표 전 2000명 증원이 명시된 건 보정심 회의록이 유일했다.”

이상은 지난 13일 모 일간지에 게재된 『”2000명 증원 충격적” 일부 참석자 반대에도…복지장관 발표 강행』이란 기사의 골자다.

이 기사를 보고 23명 중 4명이 반대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이런 정부 부처 회의는 정부의 뜻을 거부하지 못하는 기관을 대표하는 위원이 많이 있기 때문에 분명히 반대를 표시한 사람들의 주장에 방점을 두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이런 논란이 있음에도 2000명을 밀고 나갔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장관과 차관 등 정책결정 라인은 모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의대 정원 문제는 의사 배출 문제이기에 앞서 대학 교육에 관한 문제다. 따라서 이런 결정을 당사자인 의대 교수, 특히 우리나라 의학교육을 이끌어 온 중요한 의과대학 교수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정부가 성급하게 결정을 해서 오늘날 이 지경을 만들었다면 의원내각제 같으면 정권이 무너질 상황이다.

의대 교수가 아니더라도 의대가 있는 대학에서 교수를 오래 한 사람이라면 의대 교육은 다른 단과대학과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안다. 총선이 있기 전에 나는 페북을 통해서 내가 봉직했던 중앙대가 의대를 오늘날처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어려운 일이 있었나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의대 하나를 육성하는 데는 과장이 없이 반세기는 걸린다고 보아야 한다. 의사가 부족하다면 현재 정원이 100명인 의대에 정원을 10명 늘리는 식으로 대처하면 된다. 그리고 의대는 인구와 경제력이 있는 도시를 끼고 있어야 한다. 학생이 없어져서 인문대학도 문을 닫는 곳에 의대를 세우자는 발상은 황당할 따름이다.

우리나라 의료 체계에도 개선할 점이 많지만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서 배출하면 된다고 이 난리를 떨었으니 몰상식하지 않은가. 더구나 대학병원은 코로나 때문에 3년 동안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면서 국민건강을 지켰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중앙대는 광명시에 병원을 개원하자마자 코로나 사태로 큰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혹시 경희대 같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정부는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에서 “대학별 의대정원 배정은 행정부의 고도의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이라며 가처분 기각을 요청했다고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2000명 증원 결정은 정책적 판단이며 그 근거와 과정 등 재판부가 요청한 자료를 충분히 제출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무리하게 밀어 붙였다면서 직권남용죄로 관계자들을 기소한 것은 어떠한가?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은 고도의 판단이 요구되는 영역이고 정책적 판단”이라고 주장했다면 어떻게 볼 것인가? 탈원전 정책이 직권남용으로 기소할 만한 범죄행위라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은 어떠한가?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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