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연으로 유명한 독일 철도. 지연의 이유로 정부의 재정부족이 지적되고 있다. 사진=독일철도(DB)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과 행복이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일반 가정에 반드시 적용되는 말이다. 가정의 가난은 대체로 수입에 비해 지출이 많을 경우 발생한다. 자산이 쌓이는 게 아니라 빚이 쌓이는 가정이 부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빚이 쌓이면 결국 망한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좌파 정부를 가진 나라가 대부분 가난을 면치 못했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우파 성향의 정부를 가진 나라는 번영했다.
좌파 정부는 나랏돈을 마구잡이로 쓰는 포퓰리즘 정책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이고 그런 나라의 돈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도 지금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나랏돈을 펑펑 쓰다보니 여기저기서 펑크가 난다.
대표적인 게 ‘국방비 미지급 사태’ 다. 국방부는 지난해 연말까지 각 군과 방위사업체 등에 지급했어야 하는 총 1조 3000억원 규모의 국방비를 아직 지급하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달 한은에서 5조원을 일시 차입했다. 지난해 9월 14조원을 차입한 뒤 석 달 만인 12월 다시 돈을 빌린 것이다.
지난해 연간 누적으로는 164조 5000억원에 달하는 자금을 한은에서 빌려 썼다. 이는 2024년(173조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정부는 세입과 세출 사이 시차가 발생해 자금이 부족해지면 한은에서 잠깐 돈을 빌렸다가 되갚는 일시 대출 제도를 활용한다. 개인이 은행에서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해 필요할 때 수시로 자금을 충당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재명정부가 5조원에 달하는 ‘급전’을 빌려 쓰고도, 일부 부처 예산을 제때 집행하지 못한 것은 나라 곳간 관리의 허점을 드러낸 사례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예산 부족으로 병·의원이 의료급여 환자를 진료하고 청구한 의료급여비용 약 2000억원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급여비 지급 지연이 반복되는 가운데, 의료 현장의 유동성 부담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12월 23일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2025년 11~12월 의료급여비용 지급 지연 안내' 공문을 발송했다. 안내문에는 의료급여비 일부가 예정된 기한을 넘겨 지급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의료급여 환자를 진료한 의료기관은 진료비 가운데 국가 부담분을 정해진 기한 내에 건보공단으로부터 지급받는다. 그러나 지급이 지연될 경우 병·의원은 인건비, 4대 보험료와 세금, 약품·소모품 대금 결제 등에 직접적인 차질을 빚게 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재정 운용과 공공기관의 기금 운용에서 연이어 미지급사태가 발생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재명정부는 확장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올리겠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 '돈 퍼주기 달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확대재정이 경제를 살린다고 주장한다. 하기야 더불어민주당에는 청와대 대변인 시절 "곳간에 쌓아두면 썩는다"는 주장을 펼쳤던 그 유명한 고민정 의원도 있다.
2029년까지 이재명 정부의 지출 계획을 보면 경제성장률의 2배가 넘을 수밖에 없는 매년 5.5%씩의 재정 확장이 예고돼 있다. 빚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이재명정부의 확대 재정, 그 끝은 어디일까?
다음 독일과 프랑스의 사례를 보자. 우리도 각종 공공서비스가 엉망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독일에서는 열차가 예정 시각보다 5분 59초 이내에 도착하면 정시 도착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느슨한 기준을 갖고 있으면서도 작년 10월 기준 DB 장거리 노선의 정시 운행률은 48.5%에 그쳤다. 열차 이용객 절반 이상이 6분 넘는 연착을 각오해야 한다는 얘기다. 심지어 주간지 슈피겔은 DB가 정시 운행률을 높이기 위해 운행 취소를 일삼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연착이 불가피한 열차를 아예 운행하지 않아 연착률 통계에서 빼는 꼼수를 쓴다는 얘기다.
프랑스도 다르지 않다. 5분 기준으로 정시 도착률이 80% 안팎이라 독일보다는 높다고 해도 선진국치고 충분하지 않다. 잦은 파업에다 관리 부실로 기차 수십 편이 멈춰 서는 사태가 끊이지 않는다.
EU 양대국이 철도 운영에 애를 먹으며 창피를 당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정부가 재정 압박에 시달리고 있어서다. 오래전 철로를 깔아둔 두 나라의 선로와 신호 장치는 워낙 낡아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하지만 예산이 턱없이 모자란다. 독일은 철로 개량에 10년간 1500억유로(약 250조원)가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추산이 나왔다. 하지만 초고령 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복지 비용과 러시아 위협에 대비하려는 국방비 지출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보니 철도 개선에 쓸 돈은 뒤로 밀린다. 프랑스에서는 국영 철도회사 SNCF가 우리 돈 40조원대 부채로 신음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GDP보다 많을 정도의 막대한 국가 채무에 시달리고 있으니 돈을 보태줄 여력이 부족하다.
재정 부실이 가져올 허약한 국가의 모습들이다. 우리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