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 트럼프 정부의 마약 주범 기소에 대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족이란 용어는 1980년대 운동권에서 즐겨 애용하던 표현이다. 당시 학생운동권은 NL(민족해방)과 PD(민중민주) 등으로 갈리는데, 이들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따르기도 하면서 친북반미 민족주의 성향을 보였다.

특히 NL은 “남조선은 미제 식민지”라는 북한의 주장을 따랐는데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NL 운동권 출신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청와대에 대거 들어갔다. 운동권 세력은 노동계에도 대거 진출해 민노총의 핵심 세력을 이루고 있으며, 이들은 근로자들의 권익 보호 못지않게 민주민족연대나 민족민주전선을 언급하며 이념적, 정치적 성향을 보여 왔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참전으로 한반도 통일이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미국은 대한민국에 암적 존재라고 여긴다. 그런 생각을 널리 퍼뜨린 사람이 리영희, 신영복 등이며 우리나라 좌파정부를 받치고 있는 주요 세력들의 성향이다.

이들은 미국 일본 등 외세에 대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감을 드러내곤 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대한 광우병 시위, 한미 FTA 반대 시위, 사드 배치 반대 등에 민노총과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대거 앞장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 풀이된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유튜브에서 토론을 벌인 유시민 작가가 “미국은 엉망이다. 몇 십 년 전에는 세계 최고라고 부러워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건강보험료도 엉망이고 사방에서 총 쏴 죽이고 대졸자들은 빚더미를 안고 사회 나간다. 좋은 사회가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도 본인이 미국에 가진 시각을 반영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의 정치나 경제는 세계 최고수준인데 유시민 작가는 왜 그렇게 삐딱할까. 유시민 작가는 그래서 딸을 독일로 유학 보냈는지 몰라도 임종석 전 실장은 딸을 ‘엉망’인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운동권 세력은 민족을 우선하고 외세를 배격하다 보니 친미, 친일 성향을 조금이라도 보였거나 보였다고 의심되는 사람은 ‘역사의 죄인’으로 몰아붙이고 낙인을 찍는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한미 동맹을 맺기 위해 미국과 핏대를 올려가며 싸우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것은 무시하고 일단 ‘친미주의자이자 가짜 독립운동가’로 폄하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일본 육사를 나왔다는 이유 하나로 한국전쟁 때 북한에 맞서 싸웠고 ‘한강의 경제기적’을 세운 공은 모조리 지우려고 한다. 반면에 김원봉은 의열단을 이끌고 독립운동을 한 공이 크므로, 광복 이후 월북해 김일성 정권 수립과 한국전쟁 기간에 국가검열상과 노동상을 지내면서 우리 국군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수많은 호국영령의 원수라는 사실은 애써 축소하려고 한다.

과거 운동권이 중시했던 민족주의는 매우 폐쇄적이고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민족(nation)과 민족소속(nationality)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획득한 것으로 출생을 의미하는 라틴어 ‘natus’에서 유래했다. 이러한 민족은 한국사회에서 흔히 강조하는 ‘혈연과 지연’을 바탕에 깔고 있으므로 외부에 대해 배타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된다. ‘우리 민족끼리’가 최고이며 외세를 타도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에르네스르 르망은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민족을 앞세우는 애국주의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위한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독일의 히틀러는 ‘민족주의=애국심’이라는 주장으로 독일 국민들을 현혹해 정권을 잡았다. 실제로 민족주의가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둔갑하면 정치적으로 매우 크게 이득을 볼 수 있는데, 좌파나 우파나 극단적인 정치인들이 이를 적극 이용한다. 예컨대, 베네수엘라를 폭망하게 만든 좌파 포퓰리스트들은 “모든 원인은 미국 때문”이라고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전 세계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에서 매우 구시대적인 관념이면서 열린 세계시민의 정신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다문화 가정이 많아진 우리 사회에서 결코 환영할만한 대상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를 망친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군부와 정치권의 석유대금 나눠먹기 등 부패 그리고 마약유통 등이 있지만, 이러한 잘못된 것에 대한 자정작용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법부가 정권의 신하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를 쫄딱 망하게 한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은 2002년 차베스를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 발생시 대법원이 반정부 세력을 옹호하자, 대법관 수를 20명에서 32명으로 늘리고 새 대법관을 자신의 지지자로 채워 넣었다. 베네수엘라 사법부는 철저히 정권의 시녀가 되었으며 그후 10여 년간 이뤄진 4만 건이 넘는 판결에서 차베스의 뜻에 반대되는 판결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의 사법 정의가 무너진 셈이다.

어찌보면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 붕괴는 좌파정부 스스로 자초했다고 볼 수 있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