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발간된 책 가운데 <한국인의 거짓말>이란 게 있었다. 한국 사회 전체가 거짓말에 무감각하다며 한국인 거짓말의 고유한 특징을 ‘무감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필자를 포함한 한국인을 참 당혹스럽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왠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거짓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되고, 연예인이 되는 것을 보면...
어느 사회에서나 타인에게 거짓말을 지적받는 것은 치명적인 모욕으로 여긴다. 그러니 거짓말을 할 땐 사회적 신용과 관련된 모든 자격이 상실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넌 거짓말쟁이야"라고 했다가는 총싸움과 살인까지 이어질 수 있다. 링컨 전 대통령은 '정직한 링컨'이라는 걸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속였다가 들키는 사람의 회복보다 속은 사람의 회복이 훨씬 어렵다고 한다. 사기를 당한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게다가 정치 쪽으로 가면 지지자들은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으로 빤한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더라도 애써 외면하거나 오히려 열렬히 응원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과 잘 속아주는 사람의 합이 맞아야 하는데 한국은 이 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속담도 나왔다. ‘속은 놈이 잘못이지.’저자는 이 무감각을 한국 근현대사와 치열한 생존 경쟁의 결합으로 풀어냈다. 사실 사람들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책에 열거된 몇몇 연구만 추려봐도 사람들은 대략 세 살부터 거짓말을 시작해 평생 2만80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단다.
거짓말에 속는 이유는 ‘욕망’이다. 200% 수익 보장이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속는 것은 상대의 욕심을 정확히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치열한 성공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세한다. 또 과거의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다시 진실이 돼온 한국 근현대사, 그 속에서 거짓말을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험이 거짓말에 대한 감각을 더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범죄 대비 사기 범죄 비율이 1위라는 사실이나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이 같은 역사와 현실의 징후라고 했다. 인구 규모까지 고려하면, 무려 일본의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문제는 소셜미디어 등으로 인해 거짓말이 보다 극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딘가에서 발화된 작은 거짓말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구석구석 전파되고, 나중에 진실이 밝혀져도 처음으로 되돌리기 어렵다. 그런데도 한국인들은 직관적으로 자신은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한국 남성과 한국 여성의 거짓말 스타일이 달랐다. 남성은 거짓말을 할 때 말이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상대를 속일 때 설득 전략을 쓰기 때문이다. 설득에서 중요한 전제 중 하나는 신뢰인데 신뢰는 정보에서 나온다. 남성들은 몸짓이나 표정 같은 비언어적 수단보다는 언어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을 하기에 언어로 많은 정보를 제공해 그 안에 거짓말을 숨기려 한다.
지난 윤석열 전 대통령도 대통령 시절 시간이 갈수록 말이 점점 길어졌는데, 지금 대통령도 말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정치인들 대부분은 말이 긴 편이다.
반면 한국 여성은 거짓말을 할 때 평소보다 말이 짧아졌다. 공감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들은 정보를 많이 줄수록 실수하거나 논리적으로 어긋날 확률, 표정이나 목소리에서 거짓말의 단서가 드러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우려해 말을 짧게 한다.
거짓말이 일상이 되다보니 국민 대부분이 거짓말에 무감각해지고 거짓말인 것을 알면서도 믿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거짓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세상이 됐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 책임도 있지만 믿어주는 사람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거짓말 같은 세상이 됐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