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국회의 국정감사는 ‘김현지 잡기’와 ‘김현지 지키기’ 싸움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지난 6월 3일이니까 4개월여 간의 기간에 대한 국정감사인데 야당이 김현지 전 총무비서관 출석을 요구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출석자 명단에서 빼려고 서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김 전 비서관이 이번 국정감사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이번 국정감사는 새 정부가 꾸려진 후 첫 국정감사라는 측면에서 여당과 야당 모두 남다른 각오로 임하는 것 같다. 여당은 국민의힘을 지난 윤석열 정부의 계엄선포 관련 내란 동조세력으로 몰아붙일 기세이고, 야당은 정권교체에 따라 자행되고 있는 적폐청산이란 명분을 내건 보복정치 등을 집중적으로 파고 들 기세다.
현재 우리나라 현안을 꼽으라면, 일단 80년 만에 검찰청이 없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치안 불안과 인권 침해에 대한 대책을 비롯해 언론출판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는 언론개혁 문제, 통신사 및 카드사의 개인정보유출과 사이버 보안, 스테이블코인 등 가상자산 시장 시스템 구축,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에 따른 정확한 피해규모와 향후 대책, 고교학점제에 따른 교육현장의 혼란 해소, 금융기관의 부실대출 해소 방안 등 셀 수 없이 많은 현안이 산적해있는 상황이다.
그런 바빠도 너무 바빠야 할 여야 의원들이 오로지 김현지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현 제1부속실장)의 국회 출석 여부에 힘을 빼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실 국정감사장에는 비서실장을 비롯해서 총무비서관, 정무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은 단골로 출석해왔기 때문에, 여야 운영위원회 협의 과정에서 당연한 출석 멤버였지만 이번에는 대통령실과 민주당이 김현지 전 총무비서관 출석에 반대 입장을 보이면서 쟁점이 이상한 곳으로 흐르게 됐다.
대통령실은 김 비서관의 출석을 막기 위해 통상 국정감사에서 출석 열외인 부속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야당인 국민의힘의 공격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권력순위 1.5다”를 비롯해서 “절대 존엄이냐” 윤석열 정부의 김건희 여사를 빗댄 “V0냐”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인 이상득 전 의원을 빗대 “만사현통이냐”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김 전 비서관 출석과 관련해서 민주당 내에서도 출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영진 의원은 “30년간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 국정감사에 나오는 것은 당연시 돼왔다. 총무비서관이든 법무비서관이든 정무비서관이든 나와서 국민 대표인 국회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맞다”라고 입장을 밝혔고, 홍익표 전 민주당 의원 역시 “국정감사에 당연히 나오던 사람의 출석을 막는 것은 논란거리가 되고 오히려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김 전 비서관이 국정감사에 출석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는데 야당과 언론이 쓸데없이 힘을 빼고 있는 모습이다. 문고리권력으로서 이 대통령의 감춰야 하는 곳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이 대통령의 성남시장 시절부터 수행해오면서 이 대통령의 감춰진 부분이 드러날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심지어 김 비서관이 다혈질적이어서 해서는 안될 말을 할 가능성이 있어서 뱉어서는 안될 말을 해 큰 사고를 칠 수 있기 때문에 국정감사장에 내보내서는 절대 안 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여기에 더해 김 전 비서관의 학력 등 신상털이에도 나서고 있다.
국정감사는 국정 전반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분야별로 조사를 해서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세금을 내는 국민들이 정부에 대해 얼마만큼 신뢰를 보낼 수 있을 지를 17개 상임위원회별로 따져 물을 수 있는 기회다.
국정감사(國政監査)는 헌법 제61조에 따라 국회가 행정부를 비롯한 국가기관들의 국정 운영 전반에 대하여 진상을 확인하고 감시·비판하는 활동이다. 즉 국회 내에서 여당과 야당이 다투는 자리가 아니라 국회가 행정부의 업무를 감사하는 자리다..
특히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지금까지 한창 진행중인 한미무역협정의 원활한 결말을 위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나라의 운명이 걸린 만큼 해결책에 전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하는 시점이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시절의 부동산 시즌2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안해진 수도권 부동산시장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도 알아보는 자리여야 한다.
그런 엄중한 시기에 김 전 비서관 출석여부를 가지고 야당은 지나치게 힘을 빼고 있고, 여당 역시 출석을 막기 위해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 내 여와 야의 싸움이 아니라 국회와 행정부의 다툼의 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일단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으로 보직이 변경됐으니, 출석 의무는 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국가 의전서열 3위인 대법원장을 증인 출석 요구하면서 대통령실 총무비서관 출석을 막는 여당의 모습에 시비를 걸지 않을 수는 없지만, 김 전 비서관 문제를 너무 길게 끌고 가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리게 만드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야당은 이럴 때일수록 정책 국정감사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서 정부와 여당이 쓰고 있는 정책이 적정한지를 따지는데 힘을 모아야 한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은 첫 국정감사인 만큼 이재명 정부의 중장기 정책 구상에 대해 국민들이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야당의 소임이 아닐까?
대통령실과 여당 역시 이번 국정감사를 김현지 블랙홀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30년 관례대로 김 전 비서관을 국정감사장에 출석시켜 이제는 여당을 넘어 국민들까지 갖게 된 의혹을 말끔히 해소시켜야 하지 않을까?
매년 국정감사에서 벌어지던 정쟁을 다시 볼 것 같은 기시감이 벌써 들고 있다.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부터 국회가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 이번 정부도 과거 정부와 차이가 없어질 것은 뻔하다.
국민주권정부를 내세운 만큼 주권자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기본 의무가 아닐까?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