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경제/통상에 관한 법을 학문적으로 완성시킨 미시건 대학교 존 잭슨(John H. Jackson 1932~2015) 교수. 후배 교수와 함께 펴낸 케이스 북 <Legal Problems of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으로 유명하하다.

대학에서 국제경제법 또는 국제통상법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트럼프의 관세 전쟁을 보고서 이제 도무지 무얼 가르치고 무슨 논문을 써야 하는지가 암담할 것 같다. 대학 시절에 유신 헌법을 보고서 이제 헌법은 무얼 공부해야 하나고 당황했던 것과 비슷하다.

전통적인 국제법은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 국가의 영역, 그리고 UN 등 국제기구를 주로 다루었다. 사실 이것도 너무 방대하고 국제법 자체가 사법시험 2차 과목이 아니어서 법과대학에선 국제법 자체가 비인기 과목이었다. 서울법대 졸업생은 외국어를 잘하지 못하고 국제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는 법학교육을 한다면서 도입한 로스쿨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넓은 의미에서 국제법의 한 부분이었으나 소홀히 생각되던 국제경제/통상에 관한 법을 학문적으로 완성시킨 사람은 존 잭슨(John H. Jackson 1932~2015) 교수였다. 미시건 로스쿨을 나오고 모교에서 국제경제법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GATT의 역사와 각 조문의 유래와 해석을 담은 <World Trade and the Law of GAAT>(1969), 그리고 GATT가 구조적으로 취약하다면서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 <The World Trading System>(1989) 등 주목할 만한 저서를 여러 권 펴냈다. 하지만 잭슨 교수는 자신과 후배 교수가 함께 펴낸 케이스 북 <Legal Problems of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으로 가장 유명하다. 미국 로스쿨에서 국제경제법이나 통상법을 공부한 사람은 이 책을 읽고 또 읽었을 것이다.

잭슨 교수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학자였으나 그는 매우 소박한 사람이었다. 한미 통상협상이 한창이고 우루과이 라운드가 출범해서 ‘통상 마찰’(trade friction)이란 단어가 우리에게 친숙해진 1980년대 말 무역협회 초청으로 잭슨 교수가 서울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몇몇 교수들과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그는 국제경제법에선 세계적 권위였지만 전혀 권위적이지 않은 소탈한 학자였다. 트럼프 때문에 NAFTA는 물론이고 WTO도 형해화 됐으니 잭슨 교수가 평생을 통해 이루어 놓은 세계통상 시스템은 완전히 갈 길을 잃은 것이 아닌가...

우리가 미국과 통상마찰이란 것을 처음 겪은 때는 레이건 대통령 2기였다. 당시 무역대표부가 한국의 담배 수입금지, 보험 시장 미개방, 지적재산권 미보호를 들어서 통상법 301조를 제기했던 것이다. 그러자 당시 야권과 진보세력은 레이건 행정부가 ‘신자유주의’라고 비난했다. 같은 시기에 우루과이 라운드가 시작돼서 농산물 시장 개방이 예고되자 농민단체와 재야단체가 거세게 반대했다. 서울에 있는 우루과이 대사관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쳐서 우루과이 대사관이 자기들은 우루과이 라운드와 무관하다고 해명을 하기도 했다.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은 조지 H.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대부분 이루어졌고 클린턴 행정부 들어서 타결됐다. NAFTA도 마찬가지였다.

돌이켜 보면 ‘신자유주의’의 극치는 레이건-부시 행정부가 아니라 클린턴 행정부였다. 골드먼 색스 출신인 로버트 루빈과 나중에 하버드 총장이 되는 로렌스 서머스가 재무장관을 이어서 지냈다. 1997년 우리가 경제위기를 겪을 당시 이들은 재무장관과 재무차관이었다. 또한 이들이 2008년 미국 월가 금융위기에 큰 책임이 있음은 확인된 바 있다.

2008년 대선 때 민주당 후보 오바마는 월가 위기에 책임이 있는 사람을 형사처벌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오바마의 법무부는 단 한 명의 금융인을 기소하지 않았다. 중국의 WTO 가입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임기 초이지만 중국의 WTO 가입 협상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는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와는 전혀 다른 공화당 대통령을 보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이 됐는지,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게 된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