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나치식 인사를 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이로 인해 머스크는 극우성향으로 몰리면서 유럽에서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발표한 테슬라의 2분기 실적이 지난해 대비는 물론이고 시장예상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면서, 그동안 시장에서 우려했던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의 리스크가 가시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와 세계 부자 1위 일론 머스크 간의 갈등으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요인들이 결국 테슬라에 악재로 작용하면서 이번 2분기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밤 발표된 테슬라의 올 2분기 실적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지난해 대비 두자리수 이상 후퇴했다. 매출은 224억96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2% 감소했다. 전기차 캐즘 등 시장 침체를 감안해 내놓은 시장 전망치인 226억4000만달러보다도 낮은 실적으로 전년 대비 두자리수 매출 감소는 지난 10년 간 처음이다.
영업이익은 9억2300만달러를 기록했는데,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2% 감소해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2%p 낮아진 4.1%를 기록했다. 순이익은 16% 줄어든 11억7200만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영업이익이 거의 반토막이 난 배경으로 트럼프의 감세법인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를 들 수가 있다. 이 법에는 화석연료 자동차의 탄소배출을 규제하는 ‘자동차 탄소배출권 거래’ 규정이 삭제돼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자동차 탄소배출권 거래’는 화석연료 등 탄소배출량이 높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전기차 회사 등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입하는 규정인데, 테슬라는 이 탄소배출권을 팔아 지난해에만 순이익의 38.9%에 달하는 27억6000만달러(약 3조9000억원)을 벌어들였다.
이번 2분기 실적에서 테슬라의 영업이익이 거의 반토막이 난 배경에는 바로 이 탄소배출권 판매수입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2분기 테슬라의 탄소배출권 판매수입은 4억3900만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반토막이 났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화석연료 자동차 비중이 높은 나라이기 때문에, 세계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에서 7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 전기차 회사들은 탄소배출권 판매 수입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트럼프가 미국 석유개발을 늘리기 위해 화석연료 자동차를 권장하는 차원에서 탄소배출권 거래를 없애면서 테슬라가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문제는 최근 의회를 통과한 OBBBA 법안의 시행은 2026년 1분기(우리나라의 2025년 4분기)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올 10월부터 테슬라는 탄소배출권 판매 수입이 완전히 없어질 가능성이 높아 갈수록 실적은 더 쪼그라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머스크와 트럼프의 갈등 이유를 놓고 많은 해석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트럼프가 머스크의 수익구조를 망가트린 것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해 대선 기간 머스크는 트럼프에게 2억5000만달러(약 3450억원)를 지원하면서 트럼프 재선에 올인 했었다. 당시 트럼프 공약에는 전기차보조금을 없애겠다는 내용이 들어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전기차 세계 1위 테슬라의 머스크가 그런 공약을 내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을 두고 해석이 분분했었다.
전기차보조금을 없애면, 전기차 시장 1위인 테슬라 이외의 나머지 기업들이 도태되면서 테슬라의 독점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기대한 머스크가 테슬라의 정책을 지지했다는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그 사이 테슬라는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량에서 밀리는 가운데, 비야디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가 비약적으로 판매량을 늘리면서 머스크의 구상과는 다른 방향의 시장이 형성됐고, 거기에다 트럼프 감세법으로 탄소배출권 판매 수입까지 사라질 판이 되면서 머스크가 공격적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머스크가 트럼프를 공격한 내용 중 가장 치명적인 부분은 지난 6월 6일 자신의 X에다 “트럼프가 제프리 엡스틴 성범죄 사건과 연루돼있으며, 트럼프가 이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진짜 이유다”라고 트럼프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엡스틴 파일 관련 루머에 대해 “자신과는 관계없다”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엡스틴 파일을 공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대통령 당선 이후 엡스틴 파일 자체를 언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머스크의 공격에 대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엡스틴 파일 명단에 들어있다는 식으로 물타기를 한 바 있다.
머스크의 지나친 정치공세에 화가 난 트럼프는 현재 머스크가 추진하고 있는 스페이스X 대신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가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 쿠이퍼’ 쪽과 차세대 미사일 방어망 ‘골든돔’사업의 파트너를 바꿀 낌새를 보이고 있다.
최근 트럼프는 베이조스와 백악관에서 비밀리에 회동한 사실이 미국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베이조스는 민간우주 사업에서 머스크와 강력한 경쟁관계에 있다.
머스크 리스크로 테슬라의 미래가 어두워졌다고 판단한 주요 인재들도 테슬라를 떠나면서 회사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판매·서비스 총괄 트로이 존스 부사장, 북미·유럽 생산·운영 총괄 오미드 아프샤르 부사장, 북미 인사 책임자 제나 페루아 이사, 인공지능(AI) 분야 최고 책임자 밀란 코박 부사장, 배터리·구동계 총괄 비니트 메타 이사,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 데이비드 라우 부사장 등 핵심인재들이 올해 테슬라를 떠났다.
극우성향의 정치행보로 인해 이미 유럽에서는 테슬라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민간 우주사업은 미국 정부와 갈등을 겪고, 로보택시는 아직도 불안정한 상황이고, 정부의 보조금은 모두 끊긴 가운데, 중국의 전기차 성장 속도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회사의 인재들도 떠나면서 머스크가 사면초가에 갖힌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고사에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말이 있다. 입이 화를 불러온다는 말이다. 머스크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1등공신이 됐지만, 온갖 악담으로 화를 불러왔다. 그 화가 기업을 흔들고 있다.
천재 기업가 머스크가 내놓을 해법에 세상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