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내용도 어떤 관점에서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진다는 프레이밍효과가 여론조사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복지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vs "빈곤층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똑같은 정책을 묻는 질문인데, 단어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국민 지지도가 39%나 차이가 났습니다. 이는 추측이 아닌 검증된 실제 연구 결과입니다.

충격적인 실험 결과: 39% 차이를 만든 단어 하나

1987년 시카고대학교 사회학자 톰 스미스(Tom W. Smith)는 미국의 전국사회조사(General Social Survey)의 1984-1985년 데이터를 분석하여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그는 같은 내용을 묻되 단어만 바꾼 두 가지 질문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첫 번째 그룹에게는 "정부가 복지(welfare)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고, 두 번째 그룹에게는 "정부가 빈곤층(poor)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빈곤층 지원에 대한 지지도가 복지 지원보다 평균 39% 높게 나타났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감정적 반응이었습니다. 0도에서 100도까지의 감정 온도계에서 복지 수급자에 대한 감정 온도는 빈곤층보다 19.5도나 낮았습니다.

단어가 만드는 연상의 차이

연구진은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지 분석했습니다. '복지(welfare)'라는 단어는 사람들에게 정부의 낭비와 관료주의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연상시켰습니다. 반면 '빈곤층(poor)'이라는 단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같은 정책, 같은 예산, 같은 수혜자를 가리키는 말인데도 우리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이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언어 게임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과학적 메커니즘: 프레이밍 효과

연구는 세 가지 핵심적인 심리적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합니다. 첫째는 프레이밍 효과로, 동일한 내용도 어떤 관점에서 제시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둘째는 정서적 연상으로, 특정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이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셋째는 가치 연결로, 특정 용어가 사람들이 중시하는 가치와 얼마나 연결되는지에 따라 수용도가 달라집니다.

연구에서는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책에는 긍정적 용어를 선택하고, 반대하는 정책에는 부정적 용어를 사용한다는 패턴도 확인했습니다. 이는 의도적인 조작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언어 선택의 결과일 수 있지만, 여론 형성에는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 상황에서의 적용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복지 확대’와 ‘사회안전망 구축’은 본질적으로 같은 내용이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복지 수급자’와 ‘사회적 약자’, ‘복지 예산’과 ‘사회보장 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인들도 이를 잘 알고 있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용어를 선택합니다. 진보 성향의 정치인들은 "사회안전망", "빈곤층 지원", "사회적 연대" 같은 표현을 선호하고, 보수 성향의 정치인들은 "복지 포퓰리즘", "무분별한 복지 확대", "재정 건전성" 같은 용어를 더 자주 사용합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읽을 때 주의할 점

이런 연구 결과를 알고 나면 여론조사를 볼 때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질문 문구를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감정적인 단어가 많이 사용되었는지, 중립적인 표현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급진적인", "위험한" 같은 형용사가 들어간 질문은 이미 응답자의 생각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독립신문

<참고문헌>

Smith, T. W. (1987). That Which We Call Welfare by Any Other Name Would Smell Sweeter: An Analysis of the Impact of Question Wording on Response Patterns. The Public Opinion Quarterly, 51(1), 7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