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기아차 회장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총 210억달러의 현지 투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현대기아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결국 트럼프의 관세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너무 성급한 항복이라는 지적과 함께 국내 산업기반 위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트럼프가 당초 4월 2일부터 수입 자동차에 대해 25%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상황에서, 디-데이 일주일 여 남겨놓고 정 회장이 미국 워싱턴으로 날아가 항복문서를 전달한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마이크 존슨 미 연방의회 하원의장, 제프 랜드리 루이지애나 주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략적 대미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정 회장이 투자계획을 발표한 루스벨트룸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문 하나 차이로 붙어있는 방으로서, 거액의 투자를 받게 된 트럼프가 VIP 대접을 해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루스벨트룸은 1902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건축한 방으로 이 후 몇몇 대통령들이 집무실로 사용했고, 현재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와 붙어있어서, 대통령이 장관이나 백악관 참모들 또는 고위 장성들과 회의를 하는 등 중요한 정책을 논의하는 공간이다.

트럼프가 세계 모든 국가들을 향해 관세협박을 해온 상황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대대적인 미국 내 투자계획서를 들고 온 정 회장을 그만큼 귀하게 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트럼프로부터 칙사 대접 받은 대가 치고는 너무 큰 부담을 안게 됐고 앞으로 현대차의 미래 역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정 회장은 이 자리에서 미국에 총 210억달러(한화 약 31조원) 규모의 투자에 나서기로 했는데, 자동차 하나만 가지고는 부담이 되다보니 자동차부품·물류·철강에 더해 미래산업·에너지부문까지 투자 3종세트를 제시했다.

자동차 부문에서는 미국 현지생산 120만대 체제 구축을 위해 86억달러, 부품·물류·철강 부문에 61억달러, 미래산업·에너지 분야에 63억 달러 등 총 210억달러를 향후 4년 간 투자하는 것이 내용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번에 미국dp 제철공장을 지어 투자하기로 한 지역은 루이지애나주다. 공화당의 텃밭으로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에게 표를 몰아 준 곳으로서, 2023년 이후에는 주지사부터 상하 양원 의원을 공화당이 싹쓸이하고 있는 지역이다. 결국 트럼프 텃밭가꾸기에 나선 셈이 됐다.

현대차는 지난 바이든 정권에서도 바이든의 요구에 따라 미국 썬벨트 지역의 중심인 조지아주에 전기자동차 공장을 짓고 있다. 조지아주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역이었지만, 2000년 이후 신흥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대표적인 스윙스테이트가 돼 민주당의 주요 공략 지역이 됐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는 조지아주에서 압승을 거뒀다.

바이든의 요청으로 2022년 약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지은 이 현대전기차공장은 바이든의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보조금을 노리고 지은 공장인데, 트럼프가 취임 후 행정명령으로 IRA보조금을 없앴고, 트럼프의 반 전기차 정책으로 인해 자칫 애물단지가 될 처지가 됐다.

정 회장 입장에서는 보조금 혜택과 함께 전기차 수요를 예상하고 10조원 이상을 투자해 공장을 세웠는데, 투자회수는커녕 트럼프 관세협박에 이번에는 자동차에 더해 철강 및 에너지사업까지 혹을 붙이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현대차는 앞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한국의 공장 하나씩 뜯어서 미국으로 옮겨가야 할 판이다. 10년쯤 지나면 현대차는 한국기업이 아닌 미국기업이 되지 않겠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 현대차가 각종 부품이나 원재료를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인건비를 비롯해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미국에서의 생산에 따른 원가부담으로 경쟁력 있는 가격의 제품 공급이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당장 정회장이 트럼프의 뒤통수를 맞았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 회장이 미국 투자계획을 발표함과 동시에 트럼프는 4월 2일부터 일괄적으로 부과하기로 한 자동차 관세에 한국에서 수출하는 현대자동차도 관세대상에 들어갈 것이라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정의선 회장의 투자약속 장소에서 "현대차가 미국에서 생산할 경우 관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고 발언했는데, 결국 미국 생산분 외에는 관세를 물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트럼프가 쓴 ‘협상의 기술’이란 책에서 말하는 트럼프 협상의 기술은 “일단 공포를 준 후 조금씩 사정을 봐주면 결국 상대는 모든 것을 다 내놓게 된다”로 모아진다.

협상에 앞서 상대가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하고, 그 공포감으로 인해 대응책을 만들지 못하게 만들어서 원하는 바를 취한다는 트럼프식 협상 방법이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트럼프와의 협상에서 겁을 먹으면 일단 패배했다고 봐야 하고 내 것을 다 내놓게 된다고 경고한다.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 있는 마러라고 리조트는 트럼프의 사저인데, 이 집을 헐값에 매수한 방식도 협박과 공포심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 마러라고의 당초 소유자인 포스트(시리얼 제조 회사)가 매각가로 2000만달러를 불렀는데, 트럼프가 마러라고의 호수방향에 있는 KFC부지 100만평을 매입해 고층빌딩을 지어 호수 전망을 가리겠다고 협박하자 포스트가 할 수 없이 700만달러에 매각했다.

전형적인 협박과 공포 비즈니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정의선 회장이 이 협박과 공포에 빨리 겁을 먹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표적인 제조기업이면서 글로벌 자동차회사인 현대차가 트럼프의 공포에 질려 밑천을 모두 날릴까 걱정이 크다.

인내의 곰을 조상으로 둔 한민족인데, 좀 더 참았다면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호랑이에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