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퇴양난에 빠진 이창용, 물가냐 집값이냐

-8월 소비자물가지수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2.0% 상승해 금리인하론에 무게
-8월 주담대 증가는 8.9조로 역대 최대치, 서울 집값 23주 연속 상승도 부담

이주연 기자 승인 2024.09.04 06:32 | 최종 수정 2024.09.04 08:26 의견 0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통계청 발표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금리인하 결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재 서울 중심의 집값 상승세에 금리 인하가 기름을 붓는 결과가 될 가능성이 높아 이 총재의 고민이 깊어보인다.

이 총재는 지난 3일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24년 G20 세계경제와 금융안정 콘퍼런스'에서 금리 인하 관련 입장을 밝히면서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을 거론했다.

이 총재는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면서도 "금융안정 등을 봐서 어떻게 움직일지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해볼 때"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이러한 발언의 배경은 이날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 지수 때문이었다.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4.54(2020년=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0% 상승했다. 이는 2021년 3월(1.9%) 이후 3년 5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이 총재는 물가가 완전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해도 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현재 예상으로는 큰 공급충격이 없으면 앞으로 수개월 동안은 현 수준에서 조금씩 왔다갔다할 것"이라면서 "물가 안정 측면에서는 우리가 생각한 경로대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김웅 한국은행 부총재보도 이날 오전 주재한 물가상황 점검회의에서 "물가상승률은 큰 공급 충격이 없다면 당분간 현재와 비슷한 수준에서 안정된 흐름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부총재보는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초 예상대로 근원물가가 안정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지난해 유가·농산물 가격 급등에 따른 기저효과도 작용하면서 2%로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서울 중심의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 금리인하로 인한 부동산 시장 불안 우려가 높다는 것이 걸림돌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지난 주 발표한 서울의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26% 올라 2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3월 넷째 주 이후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8월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8월 기준 역대 최대인 8조9115억원을 기록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6월부터 ‘영끌’ 영향으로 큰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증가액은 6월 5조8466억에서 7월 7조5975억 크게 늘어나 7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데 이어, 8월 8조9115억으로 최고치를 갱신했다.

주택담보대출 증가세로 인해 가계대출 역시 크게 늘었다. 5대 은행의 지난 8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3천642억원으로, 7월 말(715조7천383억원)보다 9조6천259억원 불었다. 5대 은행에서 확인할 수 있는 2016년 1월 이후 시계열 가운데 가장 큰 월간 증가 폭이다.

기존 기록이었던 2020년 11월(+9조4천195억원)보다도 2천억원 이상 많다.

상황이 이렇자 이 총재의 셈법이 복잡해 진 것이다. 이번달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가 확실시 되는 가운데,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빅컷(50bp 인하)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서울 집값이 국내 금리인하 결정의 발목을 잡고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빅컷을 단행할 경우 이 총재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과의 금리차가 2%p인 상황에서 미국 빅컷에 따라 10월 국내 금리수준을 어느 정도로 정해야 하는 지가 환률, 집값 등 경기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이 총재 입장에서는 물가 흐름만 보면 금리를 내리는 것이 맞지만 집값 흐름을 보면 부동산 시장 불안이 우려되는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재 주택 가격이 2016년 주택거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보다 높은 상황이고, 주택담보대출이나 가계대출 증가폭은 직전 최대수준이었던 2021년을 넘어 역대 최대이기 때문에 금리인하의 부작용이 상당히 우려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주택 매매가 지수가 물가에 반영이 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 소비자물가상승지수 2.0%에 집값이 포함 안돼있어서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을 믿고 선뜻 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리스크가 크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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