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박정원 회장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변경과 관련 오너일가의 지분가치를 높이기 위한 무리한 합병이란 지적이 일고있다. 두산그룹은 최근 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현재 두산에너빌리티 자회사에서 두산로보틱스 자회사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주식 교환비율까지 발표했다.
두산로보틱스의 두산밥캣 자회사 합병을 두고 시장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전형적인 사례라고 일컷는다. 새우도 그냥 새우가 아닌 민물새우 급이어서 시장의 반대 여론은 더욱 거센 상황이다.
현재 두산밥캣은 두산에너빌리티가 46.06%를 가지고 있는 회사로 두산에너빌리티가 대주주다. 국민연금공단 지분 7.22까지를 제외한 약 46%가 일반투자자 비중이다. 이 회사는 2013년 말 기준 연간 매출은 9조7589억원에 영업이익은 1조3899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14.24%로 우량기업이다. 순이익도 9215억원으로 순이익률 역시 9.44%로 명실공히 두산그룹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이는 캐시카우다.
두산밥캣을 인수하는 두산로보틱스는 지난해 말 기준 연간 매출은 530억원에 영업이익은 192억원 적자, 순이익도 15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매출 기준으로는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이고 이익구조로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인수 구조 자체가 지나치게 왜곡된 부분이 있어 보인다는 견해를 내고 있다.
로보틱스의 밥캣 인수 방법은 밥캣 1주당 로보틱스 0.63주의 비중으로 주식교환 하는 방식이다.
두 회사의 가치 기준을 규모나 이익 등 내재가치를 무시하고 단순히 현재 주가를 가지고 산정한 것이다. 현재 로보틱스의 주가는 15일 9시 10분 현재 10만 4400원으로 시가총액은 6조7607억원이고, 밥캣의 주가는 5만 1900원에 시가총액은 5조2029억원이다. 주가 기준으로는 밥캣의 주가가 로보틱스 주가의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밥캣의 주식을 들고있는 일반투자자들은 주식수의 63%에 해당하는 로보틱스 주식을 받든지 현재 주가 수준으로 현금청산하게 돼있다. 인수 과정이 끝나면 밥캣은 로보틱스의 100% 자회사가 된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박정원 회장 등 그룹 오너일가의 지분이 높은 로보틱스가 밥캣을 품으면서 로보틱스의 이익이 커지고, 이에 따라 오너일가의 배당도 커지게 됐다는 것이다. 향후 경영권 승계에도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는 계기도 마련된다.
현재 로보틱스의 대주주는 지분 68.19%를 가진 지주사인 ㈜두산이다. ㈜두산의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한 지분은 30.67%로 로보틱스 지분비율의 절반도 안된다.
지주사인 ㈜두산은 박정원 그룹 회장 외 26명이 39.99%를 소유하고 있는 대주주인데, 박정원 회장 7.64%를 비롯해서 박지원 5.50%, 박진원 3.64%, 박용성 3.48%, 박용현 3.44%, 박석원 2.98%, 박태원 2.70%, 박혜원 2.22%, 박형원 1.99%, 박인원 1.99% 등 오너일가가 1% 이상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 회사다. 이 외에도 0% 대지만 오너일가의 자손들까지 지분을 가지고 있다.
밥캣이 벌어들인 이익이 고스란히 로보틱스로 옮겨가고, 그 중 68.19% 만큼 ㈜두산으로 올라갈 경우 이들 오너일가의 수익이 크게 늘어나는 구도가 된다.
주식시장도 이를 반영해 오늘 오전 10시 10분 현재 ㈜두산의 주가는 2.5% 이상 오른 24만 3500원이고, 밥캣은 10% 빠진 5만원, 로보틱스 역시 약 11% 빠진 9만4000원이다.
이번 합병에 대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자본시장법의 상장회사 합병 비율 조항을 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두산밥캣은 좋은 회사인데 주가가 낮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본질가치를 찾아갈 것이라고 믿고 오래 보유하려던 수많은 주식 투자자들이 로봇 테마주로 바꾸든지, 현금 청산 당하든지 양자 선택을 강요 받는 상황이 된 것으로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안이 두산밥캣 일반주주에게는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포럼은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자본시장법이 상장회사의 합병에서는 예외 없이 기업가치를 시가로 정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합병의 99%는 계열회사간 합병이고, 이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같은 지배주주가 사실상의 의사결정을 하는 계열회사 사이에서 지배주주에게 가장 유리한 시기와 시가를 기준으로 합병 또는 주식교환이 이루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일반주주들은 회사 성장에 따른 수익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오너일가가 의도적으로 본인 지분이 높은 기업에 대한 가치를 올리고, 상대 기업가치를 내리는 등 편법이 일어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그런 부분은 수없이 거론되고 수사의 대상이 됐다. 이 부분은 현재까지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졸지에 우량 자회사를 뺏기게 된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전일 대비 소폭 오르고 있지만, 이번주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발표에 앞서 선정이 유력한 호재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포럼의 한 관계자는 “이게 바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민낯으로, 진정한 밸류업은 이런 거래를 근본적으로 막아야 비로소 가능하하다”며 “실제 모두가 기대하는 밸류업 기조에 얼음물을 끼얹은 것은 두산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이런 일을 누구도 저지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우리의 법과 제도, 자본시장법과 그 시행령”이라고 꼬집었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