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라는 운동은 아마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대표적인 운동일 것이다. 보통 경기를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적어도 5시간은 걸린다. 사전에 멤버를 정하고 날짜를 정해 예약하는 과정도 게임의 일부이고, 당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1시간 이상을 이동해 도착한 후 동반자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하고 커피를 한잔씩 들고 카트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까지 적어도 2시간이 추가로 소요된다.
운동이 끝난 후에도 식사를 하고 헤어지기 때문에 결국 골프 한번 치는데 일반적으로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봐야 한다. 하루가 다 투입된다.
긴 시간을 투자해 골프 치다 보니 농담의 종류도 많이 있고, 게임의 룰도 다양하다.
재미삼아 하는 농담이지만, 인생을 살면서 새겨들어야 할 골프농담 하나를 소개하겠다. 사람이 살면서 해서는 안되는 5가지의 금기사항이 있다고 한다. 첫홀 버디, 전반전 OECD 가입, 초년 성공, 중년 상처(喪妻), 노년 무전(無錢) 등이다.
첫홀에 버디를 하면 처음부터 기분은 좋겠지만 자만심이 생겨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무리한 샷을 하게 돼 금방 망가지고 버디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전반전에 성적이 좋아서 돈을 땄을 때 기준 이상을 따면 소위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다는 의미로 OECD에 가입됐다고 한다. 선진국 가입 대가 역시 치러야 한다. 오비, 벙커, 쓰리퍼팅, 트리플보기, 해저드에 들어갈 때마다 벌금을 내야 하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간 만큼 멀리건(벌타 없이 다시 치기)도 없어진다. 이 경우 가지고 있는 돈을 다 토해내고서야 OECD에서 해제되는데 이렇게 되면 평정심을 잃어 그 다음부터는 공이 안 맞아 후반 스코어는 속칭 망가진다고 봐야 한다.
다음 3가지는 인생과 관련한 말이다. 초년에 성공할 경우 앞의 첫홀 버디나 전반 OECD 가입과 똑같이 자만심이 생기거나 주변 견제가 심해 성공에 대한 대가보다는 비용을 더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초년 성공을 이어가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중년 상처는 치명적일 수 있다. 아이들도 어리고 사회적으로도 가장 바쁜 시기에 아내를 잃는다는 것은 인생의 반 이상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지막 노년 무전은 인생 막판에 비참함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열 지갑이 없으니 처지가 말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게 잘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들의 재임기간 관련해서도 적용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대통령 임기 초기에 당선의 자만심에 빠져 골프처럼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자칫 오비를 낼 수도 있다. 임기 초기일수록 더욱 신중함이 필요할 것이다. 오늘 나온 여론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과 관련 “앞으로 잘할 것이다”가 58.2%로 못할 것이다 35.5%를 두 배 가량 앞섰다. 그러나 과거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그닥 높은 편은 아니다. 이명박 79.3%, 문재인 74.8%, 박근혜 64.4%, 윤석열 52.7%였다.
윤 전 대통령보다는 높지만 나머지 대통령들에 비하면 크게 낮은 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이 됐을 때 막판에 지지도가 4%까지 내려갔었다. 처음 버디 했다고 버디가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임기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아내에 해당하는 존재는 상대 야당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는 여당 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 과반 정도가 지지하는 야당은 겉으로는 적이지만 사실 동반자다. 대통령 임기가 반환점을 돌기 시작하고 중간에 지방선거와 총선 등을 거치면서 야당의 힘이 오르기 때문에 이 때 야당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결국 총선이라는 중간평가에서 대패하면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벽에 막히고 야당과의 대치국면이 심해지면서 탄핵으로 물러나게 됐다.
중년에 아내가 없으면 인생 동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이재명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의힘을 비롯한 야당을 무너트릴 경우 더불어민주당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김문수 후보와 이준석 후보가 얻은 표의 합은 이재명 대통령보다 2만5649표 더 많았다. 이 표가 언제라도 수백만표로 바뀔 수 있고 그런 현상은 과거에 늘 있어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임기 말인 노년에 돈이 없는 경우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 노년에서의 돈은 정치에서는 사람이고 민심이다. 그동안 정치를 얼마나 잘 했느냐에 따라 지갑에 얼만큼의 사람들의 지지와 민심이 들어있느냐가 갈라진다.
정권 연장이냐 교체냐와 직결되는 요소다. 정권이 연장될 경우 본인의 노후도 좋지만 자신을 지지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살 길이 열리고 그동안 정성을 쏟았던 정책 기조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초년 성공과 중년 상처를 경계하고 무너트리지 말아야 노년 무전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권을 잡았다고 오만하지 말아야 하고, 야당과의 협치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 반의 민의를 수렴하는 길이 되는 것이다.
골프에서 공이 오른쪽으로 가는 것을 오른쪽을 만족시킨다는 말로 오만하다고 하고, 왼쪽으로 가는 것을 왼쪽을 만족시킨다고 해서 왼만하다고 한다. 패어웨이 가운데로 가는 것을 방향을 만족시킨다고 해서 방만하다고 한다. 누구나 방만하게 치고 싶어 한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치우치면 오비가 날 확률이 높아진다. 이재명 21대 대통령 임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지났다. 첫 티샷부터 치우치지 말고 방만하게 치길 바란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