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여의도역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터널 콘크리트 공사중 철근이 무너져 50대 남성 작업자 한 명이 심정지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사진=연합뉴스
5개월 전인 7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전날 포스코이앤씨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관련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고 강력한 질타를 할 때 만해도 포스코이앤씨에 엄청난 변화가 있겠구나 했었다.
전날인 28일 포스코이앤씨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을 두고 대통령이 벌컥 화를 낸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서 대부분 집행유예로 끝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징벌적 손해배상 검토를 지시했다.
이날 이 대통령은 포스코그룹 전체에 대해 사망사고가 많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포스코 공장 사망자 1명을 포함해 포스코이앤씨 사망자 5명을 지적했다. 이 대통령 머릿속에는 포스코 전체에 대한 안전불감증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대통령의 강한 질타에 이어 1시간 30여분간 장관들의 재해 근절 방안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사고 다발 기업의 주가를 폭락시켜야 한다”, 산재 기업의 ESG 평가 감점을 통해 투자 불이익을 받게 하고 대출을 규제해야 한다“, ”근로감독관 점검을 매일 나가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기업에 국가계약 입찰 자격에 제한을 두는 법을 만들자“ 그러면서 ”법 위반 확정시까지 몇 년이 걸리니 사고 발생 즉시 제한하자“ 그리고 ”건설사의 경우 건설면허 취소하는 것도 도입하는 게 어떤가?“란 말까지 나왔다.
말 내용만 보면 무시무시한 내용이고, 실제 당시 건설사들은 대책 마련에 회사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기도 했다. 대부분 대형 건설사들은 상당수 건설현장 공사를 중지시키고 전수 안전점검을 했다. 심지어 본사 근무 임원들과 직원들은 각각 1명씩 조를 짜서 관할 현장 몇 개씩을 맡아 본사 출근 대신 현장에 투입돼 현장 안전점검을 하느라 본사 업무가 마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러한 지시와 장관들의 맞장구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야무야 되는 분위기 속으로 빠졌다. 국토교통부에서는 면허취소의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보고했고, 이후 고용노동부에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 입법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흐지부지되는 분위기다.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주요 내용은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사고 기업에 대해 영업이익의 5% 이내의 과징금을 내고, 적자인 기업의 경우에도 최소 30억원을 부과하기로 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노동부가 국토교통부에 건설사 영업정지를 요청하는 요건도 현행 ‘동시 2명 이상 사망’에서 ‘연간 다수 사망’을 추가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한 사고에서 2명 이상 사망한 경우가 아니고 포스코이앤씨 처럼 연속해서 사고가 나는 경우 그리고 올해만 5명 사망자를 낸 경우 영업정지 요청 대상 기업이 된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가 지난 9월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발표했고, 이어서 더불어민주당 산업재해예방 TF가 11월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해를 넘길 가능성이 높아져 땅 속에 묻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불과 5개월 전에 대통령과 국무위원들 모두가 몇 시간에 걸쳐 포스코이앤씨의 연이은 사망사고를 비난하고, 대책 마련을 위해 온갖 대안을 내놨지만, 제재할 수 있는 방안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올해만 5번의 안전사고에서 4명의 사망자를 냈고, 지난 8월 6일에는 취임한 지 8개월 된 정희민 사장을 내보내고 송치영 대표이사로 교체했지만 송 사장 취임 4개월여 만에 또 지하철 현장 붕괴사고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일 송 사장이 현장을 방문해 사과를 했지만, 이미 현장의 안전관리는 엉터리였음이 밝혀지면서 정부의 감시도 허술했고, 포스코이앤씨 관리도 엉망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현장의 사고 관련 비상연락망에 있는 내용이 엉터리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미 퇴직한 사람의 이름이 안전 담당자로 올라있는가 하면, 어떤 담당자의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가 나오기도 했다니...
올해 산업재해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재명 정부는 그동안 건설현장의 안전 부실에 집중한 듯 보였는데 근로감독관을 매일 보내서라도 감시를 해야한다는 대통령의 지시는 공염불이 된 것이다.
포스코이앤씨의 이어지는 사망사고를 막기 위해 송치영 대표가 긴급 투입됐지만 결국 대형 사망사고가 또 발생해, 그룹 안전 전문가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됐다. 더구나 송 사장은 시공, 영업, 재무 등 건설사업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의 영업력이나 시공능력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포스코이앤씨는 안전사고도 막지 못하고 실적도 망가져 말 그대로 ”게도 구럭도 다 잃게 됐다“. 포스코이앤씨는 올해 총 5명의 사망자를 내 건설업계에서 가장 많은 사망사고를 냈고, 경영실적도 적자로 돌아섰다.
이재명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의 안전사고에 대한 질타 외에도 SPC삼립의 종업원 사망사고도 직접 공장을 방문해 질파를 한 바 있다. 그러나 포스코이앤씨와 마찬가지로 SPC삼립에 대한 제재 역시 꿩궈먹은 소식이다.
포스코그룹은 포스코이앤씨 외에도 포스코 제철공장에서 올해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그룹 전체적으로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달 여 전인 11월 20일에는 포항제철소에서 발생한 복합가스 중독 사고로 3명이 중태에 빠진 후 끝내 한 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다. 포스코그룹 전체가 말로만 안전을 떠드는 인명경시 풍토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코는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모습이 없고, 이재명 정부 역시 말로만 엄포를 놓고는 구체적인 제재가 없다. 양측 모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이다.
대통령의 말은 국가 정책의 기본이 된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가 정책이 기본의 되지 못할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그만큼 한번 뱉은 말이나 지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대통령의 말은 용두사미가 돼서는 안 되고 사두용미가 되거나 용두용미가 돼야 한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