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안문 광장

한국인은 유전적으로 중국인보다는 일본인과 더 가깝다. 국립보건연구원 생명의학부의 조인호 박사와 생명공학 벤처회사 디엔에이링크의 이종은 박사 팀은 질병이 없는 건강한 한국인 43명의 단일염기 다형성(SNP)을 조사한 뒤 이를 이 분야 세계적인 연구협의체인 티에스시(TSC)의 결과와 얻은 결과다. 연구 결과 우리나라 사람과 도쿄 지방에 사는 일본인과는 보통 염색체는 5.86%, 성염색체는 4.74%의 차이가 있었으며, 중국인과의 차이는 각각 8.39%, 7.80%로 나왔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알아야 대한민국 국민이 될 자격이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에게 어떤 나라인가? 고려시대는 너무 머니까 조선시대부터 보자.

조선시대부터 중국과 일본과 우리나라와의 지배기간 비율이 중국 503년 vs 일본 36년이다. 우리에게 일본이 더 큰 원수국가인가? 중국이 더 큰 원수국가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두말 할 것도 없이 중국 503년 vs 일본 36년으로 중국이 훨씬 더 큰 원수다.

중국은 한국에겐 천년 원수다. 일본은 한국에 부스러기라도 남겼지만, (부스러기가 아니라 근대산업화 기반과 기술, 재산을 남겼다) 아무튼 일본은 부스러기라도 남겼지만, 중국은 침탈만 해갔다!! 각종 인삼, 비단, 특히 우리 여자들. 근데 자기 여자도 못 지킨 조선 사대부들은 그 여인들을 환향녀라고 칭했다.

일본에 위안부가 있었다면 중국은 50만에 이르는 '환향녀'가 있다! 환향녀 뿐인가? 병자호란이 끝나면서 당시 조선 인구의 10%를 청으로 끌고 갔다. 걸핏하면 우리의 처녀들을 중국놈들이 공물로 데려가지 않았는가?

중국은 사실상 1392년 이성계의 조선건국에서부터 1895년 시모노세끼 조약때까지 503년간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지배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왕조는, 이성계가 나라이름도 명나라에 조선과 회령 중에서 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성계의 쿠데타는 잘못된 것이고 망국적 치적이므로, 최영 장군의 명나라 정벌계획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1407년 태종은 중국을 숭모한다는 모화루(모화관)을 세우고, 영은문의 전신 홍살문도 세워 중국 사신을 영접해 오다가, 중국의 요구로 1539년 중종 때 중국의 은혜를 영접한다는 '영은문'으로 이름까지 바꿔 세운 것이다.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해 우리를 분노케 했지만, 사실 그들은 500년이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조선은 무력을 사실상 포기하고 중국 밑으로 스스로 기어들어간 나라였다.

치욕적이게도 중국 황제가 승인해야 왕이 될 수 있었다. 매년 바쳐야 하는 온갖 공물에 백성들의 진이 빠졌다.

심지어 중국 사신의 서열이 조선 왕보다 높았다. 사신이 한 번 뜨면 조선의 산천초목이 벌벌 떨었다. 중국 조정에 뇌물을 바치고, 사신에 임명된 者들이 조선에 와 본전의 몇 배를 뽑았다. 중국 사신이 오면 조선 왕이 나가 영접하던 곳이 영은문이었다. 중국 황제의 은혜를 맞이 한다는 것이다.

1894년 발발한 일본과 청 전쟁에서 패한 중국이 1895년 4월 17일 일본 시모노세끼에서 일본 이등박문과 중국(청) 이홍장 간의 조약으로 "청국은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인정한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조선은 중국의 503년 지배에서 독립할 수가 있었기에 일본에게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될 것이다. 그리하여 서대문 모화관을 독립관으로 바꾸고 영은문 자리에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독립문을 세운 것이다.

독립이라 하면 일본으로부터 독립만 아는데, 서대문에 있는 독립관과 독립문은 36년간 지배해온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503년 동안 지배받던 중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7년 서재필 박사가 주축이 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중국 공산당을 존경하고, 반일을 내세우는 주사파 운동권이 권력을 잡으면서 중국이 우리에게 준 막대한 피해는 묻히고 잊혀졌다.

1950년 6·25 남침을 김일성과 모의하고 적극 지원하여 우리국민 수십만명을 살상한 마오쩌둥을 존경한다는 정신나간 전직 대통령까지 등장했다.

독립문에 대한 무식과 오해가 희극이 돼버린 사례가 문재인의 2018년 3·1절 기념식이다. 대통령이 3·1절 기념행사를 마치고 독립문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우리 국민들의 비극이다.

우리를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일본이고, 우리를 일본으로부터 독립시킨 것은 미국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에겐 8.15 광복절뿐 아니라 1895년 4월17일도 광복절임으로 둘 다 기념해야 될 것이다.

과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중국과 일본에 대한 개념 정립을 다시 해 그동안 이념의 함정에 빠져 생겨난 잘못된 역사의식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