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자력발전소. 사진=웨스팅하우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과 미국의 웨스팅하우스 간에 맺은 노예계약 기한이 50년이 아닌 영구적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우리 스스로 우리나라 산업계에 치명적인 족쇄를 채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월 4일 24조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수주와 관련, 지식재산권 싸움을 벌여온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 간 맺은 이면계약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노예계약이란 비판이 일었는데, 이 노예계약이 알려진 50년이 아닌 영구 종속계약이라면 이는 스스로 기술주권을 포기하고 영구 식민지가 되겠다고 자청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말이다.

노예계약의 주요 내용은 한수원이 해외 원전 수주시 원전 1기당 6억5000만달러(9100여억원)의 물품 및 용역구매와 1억7500만달러(2400여억원)의 기술사용료를 웨스팅하우스에 지불하고, 한국이 수주한 체코와 사우디 원전의 연료와 그 외 지역 원전의 50% 연료를 웨스팅하우스가 공급하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형 소형원전이라고 홍보해온 SMR 등 차세대 원전 수출 시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자립 검증을 통과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원전 1기 당 4억달러의 은행 보증신용장을 발행하는 조건도 들어있다.

수출 대상 국가도 한국은 필리핀, 베트남, 카자흐스탄, 모로코, 이집트, 남아프리카, 브라질, 아르헨티나, 요르단, 튀르키에,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만 정해졌다.

이들 나라들 대부분은 한국의 수주가 쉽지 않은 나라들이라는 것도 웃기는 상황이다. 동남아는 중국, 카자흐스탄과 튀르키에는 러시아, 아프리카는 중국과 러시아 영향권이어서 우리나라가 수주하기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계약을 5년 마다 웨스팅하우스가 파기하기 전에는 영원히 자동연장 된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대해 이사회에서 문제제기를 하자 유효기간을 50년으로 정했지만, 웨스팅하우스가 파기하기 전에는 자동연장 한다는 단서조항이 들어있다니 이것은 명백한 꼼수고 국민을 대상으로 장난을 친 것과 다름 없다..

한쪽이 중대한 의무를 위반했을 때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데, 웨스팅하우스의 귀책 사유에 대해 한수원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지만, 한수원의 귀책사유에 대해서 웨스팅하우스는 기술실시권을 행사한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이 정도면 한국형 원전이란 말은 사라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결과는 이미 예견돼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동안 우리 정부나 한수원 그리고 한전 모두가 안일한 자세로 일을 벌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한국형 원전이라고 주장하는 APR1400 기술이 현재로서는 웨스팅하우스의 기술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까지도 법적으로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APR1400 기술의 기반은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의 ‘시스템80’ 원자로 기술에서 나온 것인 것 2000년에 웨스팅하우스가 CE를 인수하면서 이 기술의 소유주가 됐다.

웨스팅하우스는 한국전력기술이 이 기술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개량을 거쳐 OPR-1000과 APR1400을 개발했기 때문에 한국형 원전이라는 APR1400은 자사의 원천기술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원자로냉각재펌프와 원전계측제어시스템 등 핵심기술을 국산화해 독자적인 기술자립을 이뤘다고 주장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APR1400의 근본 설계가 시스템80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특히 미국 수출통제법(10 CFR Part 810)을 근거로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이 사용된 원전의 해외 수출에는 미국정부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왔다.

결론적으로 한국형 원전이 상당부분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성공한 것은 맞지만 기술의 뿌리가 웨스팅하우스에 있기 때문에 지식재산권 싸움에서는 웨스팅하우스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캐나다의 자산운용사인 브룩필드 비즈니스 파트너스가 2018년 인수해 소유하고 있지만 원전 기술 자체가 미국의 전략자산에 들어가있는 만큼, 미국과의 소송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체코 원전을 두고 경쟁을 벌였으니 현재와 같은 결과는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웨스팅하우스 역시 체코원전 입찰에 참여했지만 초기에 탈락하고 최종 한국과 프랑스가 경쟁한 끝에 한국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APR1400이 한국 독자적인 기술이냐를 두고 미국을 등에 엎고 있는 웨스팅하우스와 지식재산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의 성과에 눈 먼 윤석열 정부와 한수원이 독이 든 사과를 덥석 문 꼴이 된 것이다.

이러다가 국내에서 건설하는 원전에 대해서도 웨스팅하우스가 원천기술을 주장하며 기술사용료·물폼 및 용역 공급과 연료공급을 주장할 지도 모를 일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0기 이상의 원자력발전소가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엄청난 시장을 앞에 두고 우리나라가 웨스팅하우스와 대물림 하는 노예계약을 맺은 것이다.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스마트폰을 세상에 내놨을 때 삼성을 비롯해 기존의 휴대폰 기업들에게는 엄청난 비상이 걸렸다. 실제로 노키아는 이로 인해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됐다.

스마트폰 대부분의 지식재산권은 애플에 있었기 때문이고 세상은 스마트폰 세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 삼성은 애플과의 끊임없는 법적 특허 전쟁을 벌여 살아났고, 현재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물론 구글의 운영체계를 이용하면서 상당한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지만, 애플과는 2011년부터 수백건에 달하는 특허전쟁을 벌여 결국 7년 만에 상호 합의를 봤던 것이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은 미국은 물론 삼성 스마트폰이 진출한 모든 나라에서 진행됐었다.

한국형 원전도 그러한 지리하지만 끈질기게 투쟁적으로 법적인 대응을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한국의 주장이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정에 반영됐어야 했다.

계약 파기에 따른 배상 책임이 따르고, 체코원전 수주가 무산될 수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웨스팅하우스와의 계약을 재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영구 노예계약 사실이 밝혀진 만큼, 당장의 손실이 발생하겠지만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럴 때 쓰는 말이 ‘배수진’이고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다.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우리나라만큼 가격경쟁력이 있는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에 웨스팅하우스 역시 한국의 원전 능력이 절실할 것이다.

한국형 원전 기술에 더해 세계 최고 수준의 SMR 기술, 독점력을 가진 두산에너빌리티의 원전 장비, 대우건설, 현대건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사들이 있는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는 것을 웨스팅하우스와 맞서면서 세계 시장에 보여줘야 할 것이다.

이것이 100기 이상의 원전을 먹겠다는 수주전략 아닐까?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계산은 절대로 배제돼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