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사업은 모두 잘 알고 있겠으나 4대강 사업에서 보여 준 이명박의 오만과 독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 앞서 있었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있었던 청계천 물값 분쟁과 서울시 취수장 이전에 따른 물값 분쟁이다. 모두 서울시와 한국수자원공사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두 사건은 내가 직접적으로 개입되었기도 하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서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이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게 된 계기는 청계천 복원이다. 당시 이른바 보수 신문과 경제신문이 이명박을 얼마나 치켜세웠는지를 지금 다시 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것이다. 청계 고가도로가 수명을 다했고 심지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는 오래됐다. 하지만 이것을 철거하는 일은 세우는 일보다 몇 배는 어렵기 때문에 그것을 해낸 이명박의 추진력은 알아 줄만 하다. 하지만 청계천 복원은 애당초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다. 조선조 한양 지도에 나왔던 4대문 안의 개천들은 서울이 콘크리트와 시멘트로 뒤덥힌 후에 건천화되어 버렸다. 1950~60년대의 청계천은 물론이고 금천, 중학천 등은 오물과 쓰레기로 범벅이된 더러운 구덩이였다. 그래서 박정희 정권 시절에 모두 복개된 것이다. 따라서 청계천을 복원한다는 말은 도무지 어불성설이고, 실질은 고가도로를 걷어내고 새로 시멘트 구조물을 만들어서 물을 흘려보내는 인공 물길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하천의 물길를 돌려서 리버 워크(River Walk)라는 명소를 만든 텍사스 샌안토니오와 청계천은 완전히 다르다.

이른바 청계천 복원 공사가 끝나가는 2005년 봄, 마지막으로 물을 끌어드리는 문제가 남았다. 유일한 방법은 수돗물을 흘리던가 한강 물을 끌어서 적당히 정수해서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한강 물을 끌어오려면 취수허가를 받아야 하고 물값을 수자원공사에 지급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적으로 흐르는 한강물은 이미 고갈되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한강 상류의 소양댐과 충주댐에서 흘려보내는 댐물(dam water)을 수자원공사로부터 사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잠실 롯데월드의 호수로, 롯데는 수자원공사에 물값을 내고 물을 공급 받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물값을 내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수자원공사에 통고해 버렸다. 수자원공사는 공짜로 청계천에 물을 공급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이 팽팽하게 대립해서 수자원공사는 이 문제를 건설교통부 산하의 중앙하천관리위원회에 회부했다. 하천법에 의해서 중앙하천관리위원회는 물 분쟁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고 그 때 나는 그 위원회 위원이었다. 당시 위원장은 고려대 윤용남 교수였다. 윤 교수는 서울대 총장을 지낸 선우중호 교수와 더불어 수자원학계의 원로였다. 윤 교수는 나한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서 나는 당연히 물값을 내야한다고 답했다. 위원회에 참여한 건설기술연구원의 두 연구위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해(2005년) 9월 5일 중앙하천위원회가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그런데 전혀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중앙하천위원회는 민간위원장 외에 건교부 실장이 공동위원장인데 통상적으로 건교부 실장은 회의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날 남 아무개라는 실장이 들어와서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이런 것 갖고 회의할 필요가 있냐면서 서울시 주장대로 물값을 면제해 주자고 발언하고 회의장을 나가 버렸다. 참석자들을 뒷통수를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손을 들고 발언을 하려고 하자 윤용남 교수는 “이 교수, 아니까 그만 합시다”라고 회의를 끝내버렸다. 이렇게 해서 당시 1년에 17억원 정도의 물값을 서울시는 내지 않아도 돼서 지금까지 공짜로 물을 공급받고 있다.

나는 그때 수자원 학자와 전문가들이 건교부 실장 한마디에 그렇게 무력해 지는데 대해 정말 놀랐다. 그 회의에 참석한 서울시 담당자들의 거만한 모습은 지금도 기억이 난다. 통상적인 경우에 건교부와 수자원공사는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나는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이 이미 이명박 수중에 들어갔구나..” 당시는 노무현 정권이고 대선까지는 2년이 남은 시점인데. 노무현 정부는 완전히 레임덕이고, 공무원 집단은 노 정권에서 이탈한 것으로 보였다. 당시 박근혜는 한나라당 대표이고 차기 대선후보로 지지도는 이명박보다 높았으나 그것은 여론조사일 뿐이었다.

1년에 17억 원은 큰 돈은 아니지만 이것이 선례가 되면 여기저기 지자체가 물값을 내지 않겠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더 큰 문제가 수자원공사와 서울시 사이에 있었다. 취수장 이전으로 인한 물값 문제였다. 왕숙천 근처에 있는 자양 취수장과 구의 취수장이 수질이 좋지 않아서 팔당 댐 아래의 강북 취수장을 새로 만들고 자양과 구의는 취수를 중단하는 계획이 추진되어 왔고 이명박 시장 시절에 완공을 앞두게 되었다. 서울시는 기존의 구의 취수장과 자양 취수장이 갖고 있던 기득수리권(상류에 댐이 세워지기 전부터 갖고 있던 취수권)을 합쳐서 기득수리권으로 인정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물값 지불을 거절했다. 서울시는 연간 100억원이 넘는 물값을 내기를 거부했는데, 이미 수공에 물값 지불을 몇 년째 거부하고 있는 춘천시 등 지자체의 물값을 합치면 연간 수백억원에 달해서 수자원공사의 경영이 곤란해 질 상황이었다.

법리적으로 민법의 수리권 조항과 하천법, 다목적댐법, 수자원공사법 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게 쟁점이었다. 결국 방법은 소송 밖에 없었고, 나는 소송으로 가면 100% 승소할 테니까 소송을 제기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했다. 당시 수자원공사는 사장이 공석이고 부사장인 유 아무개가 사장을 대행하고 있었다. 건교부마저 등을 돌린 상황에 수자원공사는 사면초가 같았는데, 유 부사장은 내가 써준 포지션 페이퍼를 보고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당시 유 부사장은 정년을 얼마 앞두고 있었는데, 용기를 내서 서울시 상대로 한 소송 제기를 결재하고 퇴직했다. 수자원공사가 다음 대통령으로 유력한 이명박이 시장으로 있는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니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1심은 대전지방법원에서 서울대 법대를 나온 판사가 담당했는데, 수자원공사가 경쾌하게 승리했다. 2심 재판장은 소송을 지연시키면서 수자원공사에게 서울시와 조정을 하라고 압력을 가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수공 법무실에게 이야기했다. 우연한 일치인지 어떤지 2심 재판장은 오세훈 시장과 고대 법대 동기였는데, 결국 서울시 손을 들어주었다. 대법원 상고심은 김지형 대법관이 재판장을 하는 부에 배당됐다.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지방대 출신으로 대법관으로 임명된 김지형이 재판장이라고 하자 나는 안도했다. 김 대법관이라면 동창이니 뭐니 하는 연고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법리에 따라 판결할 것이라 믿었다. 긴장한 수자원공사는 대형 로펌에 상고심을 맡겨서 대법관을 지낸 변호사가 중심이 되어 소장을 썼다. 내가 보기는 그것은 분명한 사건이어서 대형 로펌으로 갖고 갈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2011년 1월 13일, 대법원은 수자원공사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수자원공사는 당장 120억 원 물값을 서울시로부터 받아냈고 매년 물값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물값 지불을 거절해 온 춘천시 등에 대해서도 수자원공사는 지연이자까지 부가해서 물값을 받아냈다. 하지만 2011년에 수자원공사는 4대강 사업 수렁에 빠져서 허덕일 때였다. 그래서 수자원공사는 대법원 승소 판결을 내부적으로만 축하하고 밖으로 내색을 하지 않았다. 청계천 물값 사건부터 나는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면 제멋대로 독선적으로 국정을 몰아갈 것으로 생각했고 그런 예측은 불행하게도 100% 맞았다. 내가 아는 한 건설기술연구원의 박사나 수자원공사 직원 중에 4대강 사업을 지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할 수 없이 끌려 들어간 것이다. 4대강 사업은 그들에게도 큰 상처를 입혔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