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회장이 지난해 9월 이천 LG인화원에서 열린 사장단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 구 회장 옆에 앉은 사람(사진 왼쪽)이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사진=LG
지난 3월 말 구광모 회장이 “골든타임이 다 지나가고 있다”면서 사장단 회의에서 그룹 비상경영을 선언한 지 3개월 여 만에 실제 LG그룹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7일 잠정치를 발표한 LG그룹의 주력인 LG전자의 올 2분기 실적은 전 분기 대비 크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올 2분기 잠정 매출은 20조74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 줄어들었고,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46.6% 감소한 6391억원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전 분기인 올해 1분기와 비교해도 실적 악화가 확연히 드러났다. 매출 8.8%, 영업이익 49.2% 감소했다.
LG전자는 경영악화 원인으로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부과의 영향이 컸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미국의 관세부과 효과가 나타나려면 몇 달 더 있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미국 관세 이외의 다른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가 지난 4월 2일부터 기본관세 10%를 적용하고 있지만, 관세 예고에 앞서 선 수출 물량이 상당부분 관세를 피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미국 내 선 수출한 재고량이 소진되는 시점인 몇 달 후에야 관세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미국 관세 악영향보다는 매출 자체의 둔화와 물류비 등 비용 상승이 수익성을 악화시켰고, 가전제품의 이익구조가 취약해진 것이 주요 원인인 것으로 풀이된다.
LG전자 외에도 그룹 주력사들 대부분의 2분기 실적이 곤두박질 쳤다. 지주사인 ㈜엘지의 2분기 매출 예상치는 1조9853억원으로 전 분기 1조9361억원 대비 다소 늘어났지만, 영업이익은 4396억원으로 전 분기 6380억원에 비해 31.1% 줄어들었다.
그룹의 문제아로 지목되고 있는 LG디스플레이 실적은 더욱 악화됐다. LG디스플레이의 올 2분기 매출은 5조6347억원으로 전 분기 6조653억원 대비 7.1% 줄었고, 영업이익은 전 분기 335억원 흑자에서 804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LG디스플레이의 영업성적은 2024년 3분기 -806억원 적자에서 같은 해 4분기 831억원 흑자로 돌아선 후 지난 1분기까지 두 분기 연속 엉업흑자를 보인 후 올 2분기에 다시 적자로 되돌아갔다.
LG이노텍의 2분기 경영실적 역시 크게 악화됐다. 매출 예상치는 3조8258억원으로 전 분기 4조9828억원 대비 23.2% 줄어들었고, 영업이익은 464억원으로 전 분기 1251억원 대비 62.9% 하락했다.
또 하나의 애물단지인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은 그나마 미국 보조금 덕분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다. LG엔솔의 올 2분기 잠정실적은 5조5654억원으로 전 분기 6조2650억원 대비 11.2%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전 분기 830억원 적자에서 4922억원 흑자를 내 상대적으로 큰 영업이익을 거뒀다.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따른 AMPC(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가 큰 영향을 끼친 결과이며, AMPC를 제외하면 1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LG엔솔은 지난해 4분기 6028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할 만큼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기차캐즘(일시적 수요 감소)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LG화학은 LG엔솔의 영업이익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시작된 영업적자 행진을 중단하고 3000억원 안팎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 그러나 LG화학은 지난해 4분기에만 6293억원의 영업적자를 냈고, 2024년 연간으로 5632억의 영업적자를 냈다. 올 1분기에도 107억원의 영업적자를 이어갔다.
하반기 트럼프 관세까지 덮쳐…구광모 회장 해법 찾아낼까?
이러한 LG 주력사들의 경영악화는 지난 3월 27일 구광모 회장이 경기도 이천 인화원에서 경영진 30여 명과 함께 올해 첫 사장단 회의를 가진 자리에서 비상경영을 선언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LG그룹 영업구조에 근본적인 문제가 일어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당시 구 회장은 “변화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일로서, ‘골드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해, 그룹 전반의 위기상황을 변화로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이어서 “경영진이 주도적으로 대안을 구체화하고 단순히 ‘할 수 있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해야 하는 것’ 중심으로 실체적인 변화를 이끌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구 회장의 비상경영 선언과 경영진들에 대한 ‘골든타임 비상경영’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은 크게 악화되면서 구 회장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그룹의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 밤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대해 8월 1일부터 상호관세를 25% 부과할 것임이 밝혀졌다. 기존 기본관세 10%까지 더하면 미국 수출품에 대해 총 35%의 관세가 붙게 된다. LG전자를 비롯해서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대부분 미국에 수출하고 있는 LG그룹의 발등에 불이 붙은 상황이다.
한편, 지난해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LG 경영진의 보수는 지나치다는 지적과 함께 어려워진 그룹의 상황에 따른 고통분담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5632억원의 영업적자를 낸 LG화학의 신학철 부회장은 지난해 급여 18억4000만원과 상여금 4억6000만원 등 총 23억원을 챙겨갔다. 그 외에도 손지웅 사장 15억4700만원, 차동석 사장 9억9600만원 등 엄청난 보수를 챙겨가면서 도덕적 해이 지적을 받았다.
2018년 6월 그룹 회장에 취임한 지 딱 7년이 된 구광모 회장이 현재 최악의 어려움에 처한 LG를 어떤 전략으로 구해낼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