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21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가 시작됐고 며칠이 지나면 다음 대통령이 정해진다. 사전투표 첫날 20%에 이르는 높은 투표율을 보여 벌써부터 선거 열기가 대단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투표 열기가 뜨거운 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난 세 번의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모아놨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후보들 각각을 보면 그들을 믿고 나라를 맡겨도 되는 지 하는 생각이 들고, 어느 한 구석이라도 믿음이 갈 만한 곳을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비방과 막말과 억지와 엉터리 지식으로 남을 깎아 내리는 것 외에 자신의 장점과 실력을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다. 귀를 씻어야 하는 말까지 등장했다.
비단 이번 대선에서만의 그림은 아니다. 이미 그 전 전부터 이런 소모적인 토론문화가 자리잡았고, 그렇다 보니 후보 검증의 기회를 갖지 못한 국민들은 그저 차악(덜 미운 사람), 그리고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저쪽 사람이 되는 것은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감정으로 투표장에 몰려가게 됐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물며 기업에서 신입직원을 채용할 때도 실력과 소양 그리고 성실함 등이 종합된 소위 능력과 인성을 보고 뽑는데, 나라와 국민을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절차를 어떻게 이런 엉터리 방식으로 뽑을 수 있는 지 참으로 웃음도 안 나온다. 이 후보들이 보인 성격이라는 색깔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상상하면 앞날이 참으로 아득하다.
사람의 색깔인 성격은 성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올해 105세의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김형석 교수는 성격을 바꾸는 것은 어려워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습관을 바꿔야 하고, 또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행동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기 위해선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과정을 겪어도 본성이 바뀌기는 어렵다지만 그래도 꾸준한 올바른 교육을 통해 어느 정도 흉내는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생각을 바꾸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말한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교육과 자기반성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번 세 명의 후보가 과연 오랜 교육의 과정을 통해 올바른 생각을 만들고, 그 올바른 생각으로 행동과 습관을 만들어 지도자가 될 만한 성품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본성도 엉터리인데 교육을 통한 성품도 갖추지 못한 이들이 국민과 국가를 과연 어디로 이끌어 갈까? 매번 대통령 후보들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내놨다. 그러나 매번 이들 비정상적인 사람들은 결국 정상화마저 비정상화로 만든 장본인이 됐다. 본인들 눈높이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석 교수의 글 일부를 소개한다.
200년 전에 영국 런던에 태어난 사람과 같은 시기에 아프리카 산간에서 자란 사람이 같아지지는 못한다. 주어진 시대, 사회적 숙명을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시대, 같은 사회에 사는 사람에게는 동일성이 있다. 그래도 넘어설 수 없는 운명에 차이가 있다면 그들의 성격이라고 본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주인공들이 잘 설명해 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성격대로 살다가 죽게 되어 있다. 그래서 갖고 태어난 성격은 각자의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성격이 강하고 유능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 큰일을 하고 성공한다. 그런데 노년기가 되고 성공했다고 자부하던 사람이 그 자만심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타고난 욕망과 명예심 때문에 실패를 자초하는 지도자가 된다. 타고난 본성과 성격 때문이라고 평한다. 우리 주변에서 존경 받고 업적을 남겨 준 지도자 중에서 애국심을 갖고 자신을 억제하며 희생시킬 때는 성공했으나 그 희생정신을 상실한 후에는 욕망의 본성을 극복 못 한 지도자를 보게 된다.
그런 타고난 운명 즉 성격을 바꿀 수 있는가. 한때 행동과학 연구가들은 그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학설을 우리나라 기업체 교육에 적응시켜 보기도 했다. 주어진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성격을 바꿔라. 성격을 바꾸기 위해서는 습관(習慣)을 바꿔라. 습관을 바꾸기는 수월하다. 계속해서 행동을 바꾸면 된다. 행동은 생각을 바꾸면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그리고 생각은 항상 바뀌게 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생각을 바꾸는 것은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관찰해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얼마나 오랜 교육과 자기반성은 물론 노력이 필요한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사고는 감정과 함께 발생하며 감정은 지성보다도 의욕에 속한다. 그 의욕은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의 상태여서 변하지 않는다. 그대로 살다가 끝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행동을 바꾸는 데 영향은 줄 수 있다. 그러나 결정적이지는 못하다. 수면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부만 보고 물속에 잠겨있는 더 큰 빙산을 못 보기 때문이다.
살아 보면 나는 그 시대와 사회가 가진 정신계 속에 살다가 그 안에서 끝난다. 시대와 공동체 의식이 곧 개인의 정신계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리며 사회적 평가를 받는 것이 인생이다. 생각은 우리가 갖고 사는 사상을 말한다. 그 사상을 독단적으로 창조해서 사는 사람은 없다. 그랬다간 현실을 벗어난 열매 없는 공염불로 그친다. 한때는 유토피아 관념이 성행했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현실을 벗어난 정신계의 꿈일 뿐이다…
가슴에 새겨야 할 글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