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심 교체로 긴 줄이 늘어섰던 SK텔레콤 대리점 앞에 5월 1일 현재 이상하리 만치 사람이 없다. 유심 소진으로 교체를 못하는 가입자들의 불편이 길어지고 있다. 사진=수도시민경제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건은 사건 자체의 심각성에 더해 SK의 경영적 판단 지연과 미숙이 불러온 후속 폐해가 훨씬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얼마나 더 큰 파장으로까지 이어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마트폰에서 유심은 시스템과의 연결 열쇠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이 유심이 해킹을 당했다면유심 주인의 네트워크 내력이 공개될 수 있고 복제가 가능해져 개인적으로 심각한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는 상황이어서 자칫 전체 피해규모가 엄청날 수 있는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는 SK텔레콤이 유심 해킹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피해와 대처 방안 등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피해를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확실한 것은 개인정보 유출과는 차원이 다른 사태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

대부분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인증을 받고, 금융거래를 하고, 물건 구매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털릴 수 있는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수 있는데, 정작 SK텔레콤은 유심 교체 이외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서 가입자들의 불안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 더욱 아쉬운 점은 해킹사태가 발생했을 당시의 잘못된 경영적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사건이든 사고이든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심각해진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간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해킹사고 발생 신고 지연에 이어, 고객에 대한 사과와 해명 지연, 거기에 지금까지도 밝히지 않고 있는 해킹에 따른 일어날 수 있는 피해의 내용과 규모다. 이로 인해 가입자들은 불안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확실한 해법이 될 수 있는 번호이동에 대한 위약금 부분에 대해서는 사고 발생 보름이 돼가는데도 명확한 조치가 없어 SK텔레콤 가입자들의 마음이 떠나고 있는 상황이다.

SK텔레콤 유심 해킹을 틈타 통신사 변경 틈새 마케팅이 확대되고 있다. 사진=수도시민경제

오죽하면 유심 교체작업 이틀 만에 7만여 명이 번호이동을 했고, 그 중 상당수는 위약금을 물면서까지 타 이동통신사로 옮겨갔을까?

1991년 3월에 발생한 두산전자의 낙동강 페놀 유출사고를 소환해보자. 당시 두산전자의 페놀원액 저장탱크에서 페놀수지 생산라인으로 통하는 파이프가 파열돼 30톤의 페놀 원액이 옥계천을 거쳐 대구 상수원인 다사취수장으로 흘러들어가 수돗물을 오염시킨 사고였다.

문제는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는 시민들의 신고를 받은 취수장측이 원인규명을 하지 않은 채 페놀 소독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염소를 다량 투입해 페놀성분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사태를 만들었다. 이 취수장 물이 낙동강을 통해 밀양, 함안, 칠서 등 수원지를 덮치고 결국 부산, 마산 등 영남 전 지역의 수돗물을 오염시켰다.

이 사태로 환경처 공무원, 두산전자 관계자 등 총 13명이 구속되고, 국회 진상조사 위원회가 열리고, 박용곤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나고 환경처 장차관이 경질됐다.

이 사고 이후 두산 제품에 대한 국민 불매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져, 맥주 부동의 1위인 OB맥주가 크라운맥주에 추월당하면서 두산의 이미지는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결과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두산전자는 페놀 관리에 대한 안전장치나 누출에 따른 경보장치도 없었고, 정화시설도 부실해 평소에 정화하지 않은 페놀을 소량씩 버렸는데, 정화비용 500만원을 이끼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두산은 이 500만원 아끼려다가 결국 이미지가 땅에 떨어지면서 B2C사업을 접게됐다. 네슬레, 한국3M, 코카콜라 등 지분을 서둘러 처분하고 음료부문에서 완전히 철수를 하게 됐다.

그 사고를 계기로 두산이 중후장대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 지금은 원자력을 포함해 첨단제조분야의 강자가 됐지만, 자칫 그룹이 패망할 수 있는 위기를 겪었다.

그러한 그룹을 뒤흔든 단초가 단 500만원을 아끼려다 벌어진 사고라니 참으로 허망하기 짝이 없다.

이번 SK텔레콤의 유심 해킹 사건의 원인이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나오겠지만, 일단 우리나라 이동통신 점유율 약 50%인 기업이 정보보호투자액은 25%에도 미치지 못한다니 할말이 없을 것 같다.

이동통신 3사의 지난해 정보보호 투자액을 비교해보면, 가입자수 2307만명에 매출 10조6000억인 SK텔레콤의 연간 정보보호투자액은 600억원인데 반해, 1336만명 가입자에 6조9000억 매출인 KT는 1218억원, 1094만명 가입자에 6조1000억원의 매출인 LG U+는 632억원이었다.

영업이익 1조8000억원을 벌어들여 나머지 두 회사의 영업이익 합계화 맞먹는 SK텔레콤이 이통 3사 가운데 가장 적은 정보보호투자액을 지출한 것이다. 분명 사고의 원인이라고 지적할 만 하다.

여기에 번호이동에 따른 위약금에 대한 신속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는 것도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 결국 오는 8일 최태원 회장 국회 청문회까지 열리게 됐다.

정확한 사고의 원인과 구체적인 피해가 밝혀져야 하겠지만, 현재까지 SK의 태도를 보면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가입자들에게 진짜로 심각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그 여파는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

SK그룹의 최대 B2C 기업인 SK텔레콤이라는 꼬리가 그룹 몸통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사태까지 갈 수 있다는 가정을 하고 선제적으로 투명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것이다.

만일 가입고객을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로 생각하고 위약금을 비롯해 조금의 압박이라도 가한다면 악성여론은 유심 교체의 수십배 빠른 속도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길 바란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