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딥시크의 창업자 겸 CEO인 량원펑
올해 들어서 세계경제는 미국 트럼프가 휘두르는 관세칼춤의 소용돌이에 빨려들면서 혼란을 겪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우리가 그동안은 모방기술의 대명사로만 알았던 중국이 기술로 미국과 맞서는 미·중 기술 패권전쟁의 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그동안 기술력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아온 대한민국이 이 글로벌 기술전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처지가 돼 어쩌다 우리가 이지경이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중국의 변화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고 우리가 한참 뒤질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중국은 그동안 우리나라 반도체기술을 훔쳐가는 나라이고, 질은 떨어지지만 싼 값의 물건을 공급하면서 세계 물가를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나라로만 알았는데, 올해 들어서 보이는 중국은 우리나라는 감히 근처에도 가기 어려운 단계로 도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AI 기술에 있어서, 챗 GPT 성능과 맞먹는 기술을 내놓으면서 개발비는 10%도 안들었다는 딥시크. 미국의 빅테크기업들을 긴장하게 만든 양자기술을 소리없이 발표한 중국 스타트업 오리진퀀텀의 ‘오리진 우콩’.
올해 중국의 춘절에 맞춰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춤과 묘기를 부린 휴머노이드 기술을 선보인 ‘유니트리 로보틱스’ 등 미래기술로 일컬어지는 분야에서 중국은 이미 변방이 아닌 본토의 모습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그동안 한국의 삼성전자가 만들어온 반도체 강국의 모습은 점차 희미해져가고, 글로벌 기술 격전지 어느 곳에서도 한국의 기술이나 전문가는 거론되지 않고 있어 이러다 한국이 어떻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미국이야 오랜 기간 엄청난 자금을 투자하면서 글로벌 인재들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만들어낸 빅테크의 아성이라고 인정할 수 있지만, 도대체 중국은 어떤 요술을 부려서 이렇게 빨리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지니를 불러낸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중국의 경제와 기업 등에 정통한 안유화 교수는 중국 기술의 약진 배경에는 고정관념이나 차별을 버리고 오로지 기술로 평가하는 중국의 신문화가 자리잡으면서 기술과 시장이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미 중국은 오래전부터 남녀, 지역, 학벌, 국적, 종교, 인종 등 차별을 모두 없애고 오로지 아이디어와 기술만으로 경쟁하면서 글로벌 수준의 기술역량으로 퀀텀점프하게 됐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여기에 미국의 규제가 지속되면서 기술 없이는 살수 없다는 절박함이 생존본능을 깨워 기술을 위해서는 기득권이든 뭐든 모두 버리고 기술혁명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으고, 젊은세대 중심으로 기술에 대한 도전정신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결과라고 한다.
그럴듯한 얘기다. 지난 설 연휴 중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 CEO인 1985년생 량원펑이 발표한 인공지능 R1은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는데, 미국의 오픈AI같은 스타트업이 딥시크 말고도 중국에 10여 개 더 있다고 하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폄훼와 견제에 나섰지만 충격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1등 자리를 위협받은 미국은 그렇다 치고,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가 매우 걱정이다.
정부나 기업들에게 “우물안 개구리 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알량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업을 망치고, 국가를 망치고 젊은이들의 꿈을 망치는 ‘차별’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지 않은가.
최근 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도 대한민국은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에 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조사기관의 자료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 4명 중 3명은 차별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기관별로 성평등지수 점수를 매겼는데, 국회 46.8점, 지방자치단체 47.7점, 언론사 47.8점, 중앙정부 48.1점, 직장 51.1점, 법원 51.9점, 학교 59.2점으로 도토리 키재기지만 모두 F학점이다.
또 다른 조사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중 70%는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는데 급여 조건 외에 직장분위기를 이유로 드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입사 3년 안에 신입직원 30%는 실제 이직을 선택해 ‘중고신입’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청년 백수 박사’란 말도 있다. 기업들이 빅테크 일을 찾지 못하면서 젊은 박사들이 일자리를 못구해 백수 신세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박사학위를 딴 30세 미만의 젊은이들 47.7%가 무직자이고 특히 이들 중 구직활동을 했음에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가 45.1%였다는 것이다.
세계 빅테크 현장에서 뛰는 인력의 30% 이상이 중국계라는 분석이 있다. 당장 세계 AI칩인 GPU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엔비디아의 젠슨황, 엔비디아의 AI칩을 클라우드에 장착하는 슈퍼마이크로컴퓨터의 찰스 리앙, AI칩 설계로 엔비디아와 경쟁하고 있는 AMD의 리사 수를 비롯해서 중국계 글로벌 인재들은 이미 미국시장에서도 상부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서 스타트업을 통해 글로벌 경쟁 기술을 내놓은 인물들은 미국 물을 먹지 않은 순수 중국 토종들이라고 한다.
중국의 무서운 질주 뒤에는 중국인이 있고, 그 중국인들은 철저한 기술 중심으로 기득권과 고정관념을 깬 지역도, 성별도, 국적도, 인종도, 종교도 차별하지 않는 평등의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연말 인사철만 되면 전라도 사람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비 전라도 출신들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대우건설의 지역주의 문화, 재무라인 중심으로 경영진을 구성하는 현대차그룹 오너의 편애적 인사 문화, 과거 미래전략실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전자 출신이 아니면 주요 보직을 맡을 수 없는 삼성그룹의 측근주의 인사관행 같은 조직문화가 대한민국을 이끄는 한 우리가 중국 따라가는 것이 요원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 최고 부자 중 한 사람인 ‘투자의 신’ 워런 버핏은 사람을 쓸 때 절대 학벌은 보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람의 문제 해결능력을 나름대로의 잣대로 평가하고 쓴다고 하는데, 95세의 나이에도 세계 최고 투자승률을 이어가는 비결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기업과 국가 모두 구성원은 국민이고, 국민의 역량이 국력이다. 국가의 최고책임자나 기업의 최고책임자는 국민의 역량을 어떻게 하면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느냐의 방법을 찾는 것이 최우선의 임무다.
혈연, 지연, 학연에 더해 전공, 출신기업까지 따지는 더 복잡한 조합을 가지고 과연 현재의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을 지 의문스럽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