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건설부문이 23일 수주한 대림가락 재건축 단지 투시도. 삼성물산은 올해 들어 2월까지 단 2달 간 함남4구역, 대림가락, 한양3차, 신반포4차 등 4곳의 정비사업 수주를 통해 3조3000억원의 수주고를 올렸다. 연간 5조원의 정비사업 수주계획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이지만, 출혈수주에 따른 수익성 측면에서 여러 우려를 낳고 있다. 사진=삼성물산
올해 들어서 삼성물산 건설부문(삼성물산)의 정비사업 수주 전선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그동안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과는 대조되는 행보를 보이면서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그동안 삼성물산은 과거 ‘래미안’이라는 인지도 높은 아파트 브랜드를 가지고도 수주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근래 들어서 갑자기 주택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그 배경으로 그룹 계열사 발주 물량이 대폭 줄어든 데다 주택사업 수주잔고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여기에 삼성전자 가전부문 지원 요청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출혈수주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삼성물산은 23일 서울시 송파구 대림가락 아파트 재건축의 시공사로 최종 선정됐다고 밝혔다.
대림가락 재건축 조합은 22일 개최한 총회에서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최종 선정하는 안건을 가결했다. 대림가락 재건축은 송파구 방이동 217번지 일대 3만5241㎡ 부지에 지하3층~지상35층 규모의 총 9개동, 867가구와 근린생활 시설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공사비는 약 4544억원 규모다.
한편 대림가락 아파트와 맞닿아 있는 한양3차 아파트 재건축 조합이 다음달 22일 총회를 열고 삼성물산과 수의로 계약하는 안을 의결할 예정으로 알려져 연이은 정비사업 수주소식을 전했다. 이 단지의 공사비는 약 2600억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서울 강남 재건축 대어 중 하나인 신반포 4차 재건축 역시 삼성물산이 수의로 수주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택업계에 따르면, 지난 17일 신반포 4차 재건축 조합이 삼성물산에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이미 통보했다.
1979년 준공한 신반포 4차는 기존 1402가구를 헐고, 지상 최고 49층 1828가구로 재건축할 계획이다. 지하철 3·7·9호선 고속터미널역 초역세권인데다 총공사비도 1조310억원 규모에 달하는 대형 정비사업장으로 주목받는 단지다.
삼성물산은 올해 최대규모의 정비사업인 한남뉴타운 4구역 재개발 공사를 지난달 18일 수주하면서 2025년 정비사업 시장에 정식으로 도전장을 낸 바 있다.
국내 건설업계 1, 2위 간의 경쟁이었던 이 단지 수주전에서 삼성물산이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수주에 성공한 것이다. 용산구 보광동 약 16만㎡에 지하 7층~지상 22층 51개동 2331가구를 건설하는 공사로 공사비는 1조60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삼성물산은 뒤늦게 수주전에 뛰어든 현대건설을 물리치기 위해 최고급의 사양을 제시하면서 출혈수주에 나섰다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삼성물산이 올해 들어 2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남4구역 재개발, 송파구 대림가락 재건축, 한양3차에 이어 신반포 4차까지 수주를 확정 지으면서 올해 들어 정비사업에서만 3조3000억원 이상의 수주를 하게 된 셈이다.
삼성물산이 그동안의 행보와는 달리 강남 등 입지 좋은 곳 중심으로 정비사업 수주에 혈안이 된 것을 두고, 건설업계에서는 과거 최고 선호아파트 명성인 ‘래미안’을 이용해 수주물량을 우선 확보하고 보자는 전략으로 풀이한다.
삼성물산은 2024년 현재 주택사업에서의 수주잔고가 전년에 비해 20% 이상 줄어든 상황이고, 반도체 공장 등 삼성전자의 발주물량도 급격히 줄어들면서 전체 수주잔고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삼성물산의 전자 계열사의 수주 전망액은 6조7000억원으로 계획돼있다. 지난해 8조2000억원보다 18% 감소한 수준이고 관련 수주가 최고 수준이었던 2023년의 12조2000억원에 비해서는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삼성물산은 이러한 전자계열사 수주 감소를 주택 수주로 커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물산은 올해 주택 정비사업 수주를 5조원으로 계획했는데, 이는 지난해 목표액 3조4000억원에서 47% 늘어난 규모다. 지난해 대비 1조5000억원 줄어든 전자 계열사 수주 감소분을 만회하기 위해 주택 정비사업에서 1조6000억원을 올려서 수주계획을 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익성이다. 전자계열사의 수주물량에 대해서는 영업이익률이 10%를 훨씬 웃돌지만, 출혈수주를 하는 정비사업에서는 자칫 손해를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무리해서라도 수주를 해야 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삼성전자 ‘가전일병 살리기’로 거론된다. 삼성물산 가전부문은 지난해 LG전자에 비해 매출은 많았지만 영업이익은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나 실질적으로 LG전자에게 추월 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형편이다.
2024년 LG전자 가전분야는 매출 48조4324억원에 영업이익은 2조3605억원을 거둔데 반해, 삼성전자 가전분야는 매출 56조5000억원에 영업이익 1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삼성전자 가전분야가 LG전자에 비해 덤핑장사를 했다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삼성물산이 주택사업을 줄이면서 삼성 가전제품의 안정적인 공급처가 줄면서 덤핑영업을 하다보니 영업이익이 크게 저하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삼성 가전 살리기 위해 래미안 매출을 늘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이 정비사업에 출혈수주도 불사하면서 사활을 건 만큼, 건설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서울 재건축 최대 관심단지로 꼽히는 압구정 3구역 수주전에 벌써부터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단지는 현대건설이 그룹의 사활을 걸고 준비해온 단지인 만큼, 한남 4구역에 이어 삼성과 현대의 한판 승부가 볼만한 결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기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