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사들이 지금까지 버틴 것 차체가 기적이다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9.17 10:30 의견 0
서울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교 병원 사진=수도시민경제

흔히 우리나라 의료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말한다. 암 치료나 장기 이식으로 미루어 보면 그런 자부심이 나올 만하다. 하지만 그 구조가 취약해서 위태롭게 버티어 온 것이 현실이다. 비현실적인 저수가로 인해 필수의료 분야는 오래전부터 서서히 고사(枯死)해가고 있었다. 더구나 툭하면 민형사 소송이 제기돼서 의료계는 사법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와 병원이 어느 정도 책임보험을 들고 있는지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고난도 필수의료와 응급의료 수가는 원가에도 턱 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무지 병원과 의사가 적정한 책임보험을 들 수 있는 여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과거에는 변호사를 비하하는 용어로 앰뷸런스 변호사(Ambulance Lawyer)가 있었다. 교통사고가 나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서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해주겠다고 달려드는 저급 변호사를 지칭하는 용어다. 하지만 교통사고에 종합보험이 도입된 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교통사고는 보험회사와 보험회사 사이에서 해결되기 때문에 변호사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변호사들에게 새로운 시장으로 등장한 것이 의료 소송이다.

1960~70년대에 미국에선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사회적 비용의 분산(allocation of social cost)으로 보는 풍조가 있었다. 그 시대에 발생하기 시작한 환경 재해, 산업 재해 등을 가해자는 강자이고 피해자는 약자라는 프레임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Deep Pocket Theory가 회자(膾炙)되곤 했다. 책임 여부에 대한 입증이 어려우면 주머니가 두둑한 놈한테 물어내라고 하자는 이야기이다. 이런 프레임에서 보면 병원과 의사는 Deep Pocket이다. 우리나라 법과대학에서도 은연 중 이런 식으로 가르쳤고, 그렇게 배운 학생들이 판사, 검사, 교수가 되어 있다.

1980년대부터 미국 공화당은 소송 개혁을 부단하게 주장해 왔다. 집단소송, 징벌적 손해배상 같은 제도를 폐지하고 소송남용을 막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자는 것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 부족하나마 성과를 이룬바 있다. 미국의 소송 변호사(trial lawyers), 그 중에서도 불법행위소송 변호사(tort lawyers)들은 철저하게 민주당을 지지한다. 미국에선 자기가 tort lawyer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한다면, tort lawyer는 격(格)이 떨어지는 변호사다. 변호사가 많아지면 고상한 변호사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고 지하철 역 광고에서 보는 그런 변호사가 늘어난다.

불행하게도 의사는 tort lawyer의 타깃이 되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의료에선 사고가 발생할 수 있고 또 발생한다. 따라서 그 위험을 보험을 통해 분산할 필요가 있다. 큰 병원이 큰 보험회사에 한도가 높은 책임보험을 들면 의료 사고가 나더라도 그 문제는 보험회사가 자기들의 변호사를 동원해서 대응한다. 그런데, 의료사고에 대비하는 책임보험을 들려면 보험료가 만만치 않고, 지금 의료 수가로는 그런 보험료를 감당할 수가 없다. 외과의사, 마취과 의사, 산부인과 의사가 보험이 없이 수술 칼을 들고 또 마취를 하는 것은 트럭 운전사가 보험을 들지 않고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 논의되는 식으로 의료과실을 면책하거나 책임 한도를 설정하는 것은 피해자 보호 측면에서 수용하기가 어렵고, 그런 법률을 통과시킨다고 해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을 확률이 100%이다. 이런 여러 사정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의료 시스템이 지금까지 버티어 온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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