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5년 영국의 한 시계공이 발명한 세계 최초의 경도시계 H1. 경도시계 발명으로 항해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17~18세기 대항해시대의 가장 큰 고민은 배들이 바다에서 자신들의 정확한 위치를 아는 것이었다. 위도는 다양한 측정 방법을 통해 알 수 있었지만, 경도는 시계를 통해 알아내야 하는데 바다에서의 시계 오차로 인해 엉터리 경도 정보가 잘못된 좌표를 제공해 배들이 표류하는 사고가 다반사였다.
당시 경도를 알아내는 방법은 지구가 하루 24시간 동안 360도 자전을 하기 때문에 1시간에 15도 움직이는 것으로 경도를 알아내야 하는데 바다에서는 이 방식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진자시계가 바다에서는 출렁거리는 파도와 습도 및 온도 변화에 따라 진자운동이 불규칙하게 일어나 시간오차가 발생하면서 엉터리 경도정보를 알려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배에는 경도 전문 항해사가 몇 명씩 승선하는 등 정확한 경도측정이 최대의 과제였다. 그렇다 보니 선박회사들은 경도측정사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측정 오류로 항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707년 10월에는 영국함대 4척이 영국 해역에서 경도 측정 오류로 표류해 좌초되면서 승선자 2000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대항해 시대를 열기 시작한 영국의 최대 해결과제는 정확한 경도측정이 된 것이다. 결국 1714년 영국의회는 ‘경도위원회’를 만들고 2만파운드(현재가치로 수백만파운드)의 상금을 걸고 경도측정기 발명 공모를 시작했다. 경도위원회의 위원장은 만유인력 법칙의 뉴턴과 핼리혜성 발견자인 핼리 두사람이 공동으로 맡았다.
당시 엄청난 상금이 걸렸던 이유는 뉴턴은 경도측정기가 발명되는 것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모를 시작한 지 21년 만인 1735년 영국의 대표적인 농촌인 링컨셔의 배로 어폰 험버 마을의 목수 겸 시계수리공인 존 해리슨이 스프링을 이용해 진자의 불규칙성을 잡은 경도시계를 발명해 ‘경도위원회’에 접수를 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진동과 온도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한 장치들이 들어가다 보니 크기는 캐비닛 만한 크기였다.
당시 경도위원회가 내건 조건은 바다에서의 오차가 하루 0.5도(20분) 이내일 경우 2만파운드, 3분의 2도(40분)일 경우 1만5000파운드, 1도(40분) 이내일 경우 1만파운드의 상금을 걸었는데, 존 해리슨의 경도시계는 하루 오차가 3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대 학자들로 구성된 경도위원회는 발명자가 유명한 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온갖 이유를 들어 상금은 반인 1만파운드만 지급했는데, 결국 해리슨은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1759년에 손바닥 만한 크기의 완벽한 경도시계인 H4를 발명했고, 나머지 상금을 끝까지 요구하다가 사망하기 3년 전인 1773년(79세)에 나머지 1만파운드 가운데 일부를 받았다.
해리슨이 발명한 H4가 바로 현재 시계의 기준이 되고 있는 크로노미터(Chronometer)다. 크로노미터의 어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다.
해리슨이 시계를 발명한 후 런던을 출항하는 모든 배는 그리니치천문대에서 제공하는 시간을 표준시로 삼게 됐고, 영국 런던의 그리니치 천문대의 경도가 0이 됐다. 그에 따라 서울의 경도는 동경 127도가 됐다. 이것을 기화로 영국은 해양개척에 앞서가면서 세계 바다를 지배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명성을 얻게 됐다.
문제는 경도시계가 나타나면서 엄청난 임금을 받고 있던 많은 경도 항해사들이 일시에 필요 없게 되면서 졸지에 실업자가 됐고 반면에 선박회사들의 경영수지는 크게 좋아지면서 선박회사들이 그 돈으로 다양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경도시계의 발명으로 해양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국가간 교역과 함께 인간의 무한한 꿈을 현실화시키는 많은 역사를 만들어냈다.
인류의 역사 속에는 여러 경도시계가 나타난다. 전기, 증기기관, 자동차, 비행기의 발명이 그렇고, 가깝게는 인터넷 발명이 그렇다. 지금은 AI와 로봇이 경도시계가 돼 세계 산업을 이끌고 있다.
앞으로는 과연 어떤 경도시계가 세계를 이끌까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데, 피지컬 AI, 휴머노이드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 이후는 과연 어떤 것이 세계를 끌고갈까? 양자컴퓨터라는 예상도 있고, 기후위기를 막는 기술이 될 수도 있고, 유전자 해석을 통한 인류 미래를 책임질 기술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모든 경도시계들은 인간의 노력과 영감으로 만들어냈듯이 앞으로도 그러겠지만, 지금부터는 과거와 달리 AI가 개입이 되면서 그 속도는 과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다. 해리슨은 발명품 공고 21년 만에 첫 발명품을 제출했고, 그로부터 또 24년 만에 H4라는 크로노미터를 세상에 내놨다. 45년 만에 완성된 발명품을 내놓은 것이다.
이제는 하루 밤 사이에 엄청난 변화를 겪는 시대가 됐다. 이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산이라는 것의 가치가 얼마나 유지될 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이 언제까지 쓰일 지 알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엄청난 경쟁력을 가지고 고액의 임금을 받던 경도항해사들이 일시에 실업자가 되듯이 지금 AI는 변호사와 세무사 회계사들 일의 상당부분을 대신 하기 시작했다.
특히 학교 교사는 머지않아 설 자리가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학교에 AI 시스템을 연결하면 학생 개인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과정이 전개된다.
오늘은 몇 개의 경도시계가 출시되고, 내일은 또 어떤 경도시계가 나타날 지…
내가 AI가 됐는지 AI가 내가 됐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으로 점차 들어가고 있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