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8년 '법의 정신'을 통해 삼권분립을 처음 주장한 프랑스 법률학자 몽테스키외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인 ‘회복을 위한 100일, 미래를 위한 성장’은 이 대통령의 여러 분야에 대한 평소 생각이 드러난 자리라는 의미를 갖는다.
특히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의 위헌 여부와 관련 ‘권력 서열론’ 발언이 도마 위에 올라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내란특별재판부 설치가 왜 위헌이냐?”고 반문하면서 ‘국민의 직접 선출 권력인 국회가 간접 선출 권력인 사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파장을 낳고 있다.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사법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란 측면에서 실제 사법개혁에 권력 서열론이 녹아 들어갈 가능성도 점쳐지기 때문에 앞으로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인 삼권분립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사법개혁 5대 의제와 관련 지난 12일(대통령 기자회견 다음날) 전국 법원장회의가 있었다. 결과는 민주당의 개혁과제 방향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결국 정부나 입법부에 종속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대통령이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면서 반대 의견을 냈다.
일련의 사법부 개혁과 권력 서열론 주장은 지난 달 말 한덕수 전 총리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 의해 기각되면서 본격화 됐고 결국 내란특별재판부 설치까지 들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 서열론은 민주주의의 기본 축인 삼권분립을 흔드는 위험한 생각이고, 그 후폭풍을 누구든 과연 감당할 수 있을 지 우려가 된다.
삼권분립은 1748년 프랑스 법률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에 처음 등장했다. ‘법의 정신’에는 몽테스키외의 20여년 연구가 담겼는데, 로마의 삼두정치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썼다.
이 책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의 배경이 됐고, 특히 삼권분립과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 헌법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다. 1787년 미국 펜실베니아 의회가 미국 헌법 초안을 잡을 때 바로 법의 정신을 참고했다. 그래서 몽테스키외는 미국 헌법의 아버지이면서 현대 민주주의의 시조로도 불린다.
몽테스키외는 중우정치와 파시즘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등 3권분립이 지켜져야 하는데, 3개의 권력이 겉으로만 나눠져서는 안되고 각각의 권력이 간섭을 받지 않고 독점적으로 행사될 때만이 삼권분립을 통한 민주주의가 보장된다고 했다.
여기에서 자칫 파시즘이나 포률리즘에 휘둘리기 쉬운 국민 다수의 오판을 견제하고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800년대 말 독일의 법률학자인 막스 베버는 삼권분립에 대해 행정, 입법, 사법 등 3개의 권력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셋 중 어느 둘이라도 융합해 같은 주체에 주어진다면 남은 한 권력은 대항할 수 없고 결국 권력분립 자체가 붕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이재명 정부는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상황이고, 이번 사법개혁을 통해 사법부까지 장악할 속셈이라는 것이 정치계를 비롯한 국민들의 우려다. 막스 베버의 경고대로 행정과 입법이 융합한 상황에서 이제 남은 하나의 권력인 사법마저 대항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 권력은 분리가 아닌 하나로 모아진 파시즘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현재 우리나라처럼 행정과 사법 모두 공화당이 권력을 잡고 있는 여대야소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때와는 달리 강력한 행정력을 펴고 있는 기반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을 유일하게 견제하는 사법부가 있어서 삼권분립의 기본이 지켜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4월 미국에 불법이민과 펜타닐 등 마약으로 인해 국가비상사태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며 IEEPA(국제긴급경제권법)을 근거로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있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캘리포니아주 등 몇몇 주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법원에 위헌소송을 낸 것인데, 지난 5월 국제무역법원(USCIT)은 IEEPA에 대통령의 관세부과 권한이 없다고 판시했고, 트럼프의 항소에 대해 7월 29일(현지시간)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이 7대 4로 역시 위헌이란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항소법원 판사 11명 중 과반 이상이 보수인 공화당이 추천한 판사들이었기 때문에 더욱 눈길이 가는 판결이었다.
오는 10월 대법원 상고심이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역시 위헌 판결을 예상하는 분위기다. 현재 미국 대법원 판사 9명 중 6명이 공화당이 지명한 인물이지만, 법리에 충실한 미국 법조계의 관례 상 위헌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미 대법원에서 최종 위헌 판결이 나올 경우 미국은 그동안 걷어들인 수천억 달러의 상호관세를 해당국에게 모두 되돌려줘야 한다.
미국 법원은 미국의 금전적인 이해득실 보다 법의 가치를 더 중시하고, 그것에 대해서는 행정권과 입법권을 쥐고 있는 트럼프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삼권분립의 현장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힘이고, 법치주의 본연의 모습이다. 결국 삼권분립을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세계 강국의 자리를 유지하는 원동력이기도 한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유지하는 원천적 힘은 삼권분립이고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 바탕 위에서 가치 기준이 형성됐고 질서가 생겼고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권력도 민주국가의 기초가 되는 기본적인 삼권분립을 침해할 자격과 권한이 없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운영의 묘를 찾고 다투는 법치를 바탕으로 삼권분립을 지키는 정상정인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거칠고 독단적인 듯 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 법체계를 지키는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 같은 모습을 보고 싶다. 그래야 예측 가능한 사회가 되고 정권이 바뀌어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겠나.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