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화필리조선소를 방문해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미 무역협상이 그동안 오픈게임을 마치고 본게임에 들어갔다. 지난달 30일 워싱턴에서 가진 한미 무역협상에서 상호관세를 15%로 당초 25%에서 10% 낮추는 대신 대미투자 3500억달러, 에너지 1000억달러 수입, 농축산물 개방 확대를 요구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측 협상 대표단은 구두로만 협의한 내용을 들고 들어오면서 개선장군 같은 모습으로 승전보 전하듯 했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 시점부터 미국의 태도가 구체화하면서 한미무역협상의 본 게임은 이제 시작되고 있다.

러트닉와 베센트, 한국 조선산업 지분 집착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방문을 마치고 서울공항에 도착하기도 전에 미국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한국과 일본의 투자금으로 미국 국가경제안보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러트닉은 26일(현지시간) 미 CNBC와 인터뷰에서 “한국, 일본 및 다른 나라들이 미국의 사회기반시설 건설을 위한 국가경제안보기금에 돈을 대게 될 것이다”면서 “이러한 것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관세를 이용해 성사시킨 거래다”고 말했다.

한국이 약속한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이고, 일본은 5500억달러다. 6000억달러를 약속한 EU는 거론하지 않아 유독 한국과 일본을 만만하게 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은 대미 투자자금에 대한 사용처에 대해 별도의 협의를 하지 않아 우리나라는 주체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알고 있는 상황인데, 미국은 자기들 마음대로 투자처를 정하면서 본격적인 이견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러트닉이 말하는 미국 국가경제안보기금이라는 것은 현재 완전히 무너진 미국 내의 제조업 기반을 살리는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자금을 의미한다. 미국 주요 인프라사업 중 트럼프가 마음대로 정한 산업에 한국과 일본이 투자하기로 한 총 9000억달러를 투자해 거기에서 나오는 운용수익의 90%는 미국이 가져가겠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우리나라가 대미 무역협상 과정에서 비장의 무기로 내놓은 마스가(MASGA, 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도 발목을 잡히게 생겼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도 27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지분 인수가 필요한 산업으로 조선업을 꼽았다. 베센트는 인터뷰에서 인텔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분 인수와 비슷한 방식으로 조선업에 대해서도 그럴 가능성을 비췄다. 그는 “조선업은 미국이 자급자족해야 하는 핵심 산업인데, 지난 20~40년 간 방치했다”면서 조선산업에 대한 미국의 지분 참여 가능성을 시사했다.

결국 마스가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한화가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같은 경우 우리나라가 투자하기로 한 1500억달러의 마스가 투자자금으로 필리조선소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꼼수로 풀이된다.

트럼프, 조선에 이어 한국의 반도체, 바이오 등으로 손길 뻗칠 듯

대미 투자금 3500억달러 중 마스가 투자금 외의 2000억달러 역시 우리나라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트럼프의 뜻대로 투자처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달 30일 미국은 반도체, 원자력, 에너지, 이차전지, 바이오의약품, 핵심광물 등 경제안보분야를 염두에 둔 발언을 한 바 있다.

결국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투자금으로 미국이 가장 취약한 제조업 중 조선, 반도체, 의약바이오, 이차전지, 원자력, 광물 등을 부흥시키는 데 쓰고, 현재 이들 분야에서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기업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미국의 제조업이라는 것은 설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실제 제작은 인프라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한국, 일본, 대만 등에 제조를 맡기는 파운드리(위탁생산 방식)을 취하고 있다. AI반도체의 경우 엔비디아를 비롯해 세계 최고 수준 기업들이 있지만, 실제 반도체칩은 대만의 TSMC가 독점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들어가는 메모리칩은 한국의 SK하이닉스가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구조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바이오 기업들 역시 특허를 가지고 있을 뿐이고 생산은 모두 외국에서 하는 방식인데, 이들 CDMO(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 생산)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나라 삼성바이오로직스나 셀트리온 등의 경쟁력이 1, 2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들 기업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국가경제안보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의 경우는 그나마 미국이 생산체계를 어느 정도 갖추고 제조경쟁력도 있기 때문에, 현대차에 대해 크게 아쉬울 것이 없다 보니,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품목별 관세 25%를 낮춰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국 반도체와 바이오 수출에 대한 200% 대 이상의 관세 협박은 미국에 공장을 세워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하겠다는 의도이고, 일단 미국에 생산시설을 갖출 경우에는 한국과 미국이 투자한 자금으로 지분을 인수해 결국 미국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대미 무역협상에서 첫 단추인 조선산업에 대한 마스가는 조선산업은 물론 전체 산업을 미국에 갖다 바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는 비상상황이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비책인 마스가를 지금이라도 강력한 무기로 삼아야

미국이 가장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분야가 조선인데, 그 문제를 풀어줄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조선 관련해서는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미국은 존스법이나 번스-톨레프슨법을 개정해서라도 우리나라에 선박 건조 주문서를 들고 왔을 것인데 서둘러 미국에 1500억달러 투자계획을 내놓으면서 조선 협상카드를 잃게 된 것이다.

현재 미국이 제3국에서 일부 제조를 해서 미국에서 배를 조립하는 행정명령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이 일시에 배를 많이 생산해야 하는 처지다 보니 당장 미국내 조선소 설립에 시간이 걸려 편법으로 내놓은 방법인데, 결국 한국의 조선소 대부분이 미국에서 생산을 하게 될 것이고, 그들 조선소의 상당수 지분을 미국이 소유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미국이 굳이 존스법이나 번스-톨레프슨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우리나라가 만들어 줬다고도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상황은 우리나라 산업이 거의 빨려 들어가다시피 하는 와중에도 한미 무역협상에 대해 문서화가 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상호관세 15% 적용과 관련해서도 명문화 돼있지 않고 그 외 여러 품목에 대해 최혜국대우를 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협상에도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에 대한 투자금만 날릴 처지가 됐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공동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이유도 발표할 내용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물며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백악관에서 31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하면서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금까지 한미 무역협상은 오픈게임이고 본격적인 협상은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전문가들 역시 한미 무역협상에 대한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할 상황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경제계 관계자는 “미국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 중 하나가 미국 내 제조업 부활인데, 이 상황에 트럼프가 가장 욕심이 나는 것이 한국의 제조업 기반이라고 할 수 있어 한국 기업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려고 온갖 수를 쓰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조선산업은 미국이 절대적으로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마스가와 관련 강력한 요구를 할 필요가 있고, 그런 강력한 요구를 통해서 다른 산업도 구할 수 있을 것이다”고 짚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