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그룹 임원 세미나에서 영상을 통해 '사즉생'을 주문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중국 춘추시대 위나라에서 장수로 활동했던 오기(吳起)는 용병술의 대가였는데, 그가 지은 ‘오자병법’에 나오는 사즉생(死卽生)이란 말은 이 후 많은 장수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지금까지도 결연한 의지를 한 데 모을 때 종종 인용되는 말이다.

이순신 장군이 인용한 말이기도 한데,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임원회의에서 강조하면서 3000년 전 오기가 한 발언을 되짚어보려고 한다.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고 죽음을 각오하면 살 것이다’란 말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의 부분이 상당히 있고 이 부분까지 이해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전쟁에서는 장수의 용맹도 중요하지만, 군사들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용병의 중요성을 알고, 군사들의 전투력을 최대로 끌어내기 위해 오기는 오자병법을 만들었다. 이 오자병법의 핵심 키워드가 바로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다.

이 말은 장수에게보다는 군사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즉 군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 있는 분위기를 얼마나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진짜 죽을 각오를 하고 전투에 임하는 지가 판가름 난다는 의미다.

최고 사령관인 오기는 병졸들 중 가장 말단 군사들과 함께 입고 마시고 잘때는 이불도 깔지 않고 행군 때는 말이나 수레도 타지 않았다고 한다. 식량도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병졸들과 모든 것을 함께 했다.

한 번은 종기가 난 어린 병졸의 상처에서 고름이 나는 것을 보고 오기가 그것을 입으로 빨았다고 하는데, 그 병졸의 어머니는 그 얘기를 듣고 통곡하며 말하길 “오기 장군이 과거 내 남편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었는데 전투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 결국 전사했단 말이오. 결국 내 아들마저 언제든 전투에서 지 애비처럼 오 장군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다 죽게 생겼네요”라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한다.

오기는 사즉생의 조건으로 이러한 군사들이 목숨을 걸수 있는 정서적인 여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전 준비 등 더 중요 것들이 있다고 한다.

오자병법 제3장 치병편 첫 장에는 사즉생을 위한 사전 준비사항이 나온다. 사즉생을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고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보급이고 다음이 전투병기 그 다음이 병사의 사기 충만이라는 것이다. 즉 보급과 병기가 잘 갖춰져야만 병사들의 사기가 충천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체계가 잡혔을 때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기업을 놓고 보면, 임직원들의 경영 최고책임자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있어야 하고, 그보다 앞서 그들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기술과 영업력 등 시스템이 갖춰져야 사즉생의 자세가 나온다는 말 아니겠는가.

최근 삼성 임원 대상 세미나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삼성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에 직면했다. 경영진부터 철저히 반성하고 ‘사즉생’ 각오로 과감하게 행동할 때’란 메시지를 전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 회장이 ‘사즉생’의 깊은 의미를 알고 그런 말을 했는지가 매우 궁금하다. 그 메시지도 직접 대면이 아닌 영상으로 했다는데, 3000년 전 오기가 병졸의 고름상처를 입으로 빨아 치료해준 것과 비교하면 비대면 영상으로 그런 말을 입에 올린 것은 무늬만 ‘사즉생’이 돼버렸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이재용 회장은 현재 삼성이 처한 위기를 과거 미래전략실 같은 ‘콘트롤타워’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삼성의 미래전략실은 이건희 선대 회장의 뛰어난 리더십을 보좌하면서 삼성을 이끌었지만, 지금 이재용 회장의 숙성되지 않은 리더십으로는 자칫 콘트롤타워가 인의장막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은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위기라고 외치면서 단행한 그룹 경영진 인사를 봐도 ‘그나물에 그밥’ ‘올드보이들의 귀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회전문 인사가 도마위에 올랐다. 인사는 만사이고 인사능력이 회장의 능력이라는 경영 제1원칙상 낙제리더십이라는 비난이 쏟아졌었다.

삼성을 오늘날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든 요인을 꼽으라면, 이건희 선대회장의 탁월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선대회장은 1993년 6월 7일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혁신의 신경영을 드라이브 했고, 2011년에는 대만계 중국 반도체 전문가 량멍쑹을 데려와 삼성전자 반도체를 세계 1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이 바로 ‘사즉생’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영입된 량멍쑹은 2014년 TSMC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14nm 공정을 개발한 데 이어 10nm 공정까지 개발을 성공해 애플의 아이폰 AP 수주에 크게 기여하면서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 반열에 올렸다.

량멍쑹이 2017년 삼성을 떠난 배경을 놓고 이건희 선대회장이 2014년 쓰러진 이후 주변 경영진들의 견제가 심해졌다는 말이 파다했는데, 이것 역시 이재용 당시 부회장의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재용 회장의 ‘사즉생’이 구호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3000년 전 오기가 말한 것처럼, 보급 즉 인프라를 구축하고, 전투병기인 최고 수준의 기술자가 필요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임직원이 똘똘 뭉치는 기업문화가 필요해 보인다.

비대면 영상 메시지를 보고 목숨을 걸고 싶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 지 묻고 싶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