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복 인천광역시장. 지난 9일 경찰이 인천시청을 압수수색한 것과 관련 유 시장은 "야당에 대한 정치적 탄압으로 오해받지 않도록해야 할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인천시
최근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과 관련 야당 지자체장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정부가 벌써부터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정치적인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번 압수수색 배경에 그런 의도가 깔려있다면, 매우 위험한 정치적인 게임이 될 뿐만 아니라 망가질 대로 망가진 우리나라 정치문화의 민낯을 보는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혐오감만 더 갖게 될 것이란 우려가 앞선다.
지난 6.3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내 경선에 참여한 유정복 시장을 몇 명 정무직 공무원들이 사표를 냈지만 수리가 완료되기 전에 몇 건의 자료를 검토한 것을 공무원 신분으로 정치활동을 했다는 것이 알려진 압수수색 이유다.
당내 경선 과정이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고, 선거결과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음을 인지하면서도 압수수색까지 한 것은 다른 속내가 있다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3대특검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의 범위를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으로까지 넓히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분히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직 야당 지자체장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 압수수색 이전인 지난 8월 25일 3대특검 특위를 맡고 있는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12.3비상계엄 선포 직후 국민의힘 소속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청사를 폐쇄하고 대책회의를 했다며 계엄 동조 여부 수사를 촉구했다. 당시 구체적으로 오세훈 서울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김진태 강원지사, 홍준표 대구시장, 이철우 경북지사를 거론했었다.
8월 31일에는 3대특검 대응 특별위원장인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역시 “지자체장 다수가 계엄 당일 청사를 폐쇄하고 출입을 통제한 채 비상회의를 진행했다”면서 “특위 차원에서 지자체의 내란 가담여부 진상규명을 위한 자료요구와 현장검증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오세훈 서울시장, 유정복 인천시장, 김진태 강원지사를 콕 집었다.
김병주 의원이 거론한 대상 중 대구시장과 경북지사 자리는 웬만해서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가기 어려우니 전현희 의원은 이 두 곳은 빼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서울시, 인천시, 강원도만을 거론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미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는 내년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낸 인물들 명단이 돌고 있다. 서울시장은 김민석 총리, 경기도지사는 추미애 의원, 염태정 의원 등이, 인천시장에는 박찬대 전 원내대표가 거론되고 있다.
오는 10월 추석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내년 지방선거 체제로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런 측면에서 벌써부터 워밍업이 시작된 분위기 속에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3대특검을 통해 야당 경쟁자들을 공격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억지성 표적수사나 압수수색이 과연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지에 대해서는 신중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12.3계엄에 따른 특검은 분명 주범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잘못을 따지는 선에서 멈춰야 한다는 얘기다.
상당수 국민은 아닌밤중에 홍두깨 식의 코메디 같은 계엄에 지금도 분노하고 있고 대통령 부부의 엄벌을 통해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그 사건에 대한 수사를 무기로 정적을 제거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12.3계엄과 동시에 행정안전부에서 각 지자체에 지침을 내려 비상체제를 가동하라고 하니, 일단 불순세력이 나타날 수 있는 상황에서 비상근무체제를 가동하는 대신 신분이 확인되는 사람만 출입을 시킨 것을 가지고 청사를 폐쇄해 계엄에 동조했다고 몰아붙이는 것을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있겠나.
시장이 대선 당내 경선에 출마해, 몇몇 정무직 공무원이 사표를 내고 수리가 되기 전에 나가는 보도자료를 일부 검토해준 것을 가지고 정치활동을 했다고 압수수색 한 것은 또 어떻고.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특검 과정에서 나오는 인물들 중 야당의 인물들, 특히 지방선거를 겨냥해 국민의힘 소속 지자체장들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공격의 고삐를 당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울 듯, 국민의 마음도 힘이 한 곳으로 지나치게 쏠리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이치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3대선에서 49.4%의 표를 얻어 21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41.1%,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가 8.3%를 얻어 국민의힘 출신들이 49.4%로 이 대통령의 득표율과 같은 수준이다. 오히려 이 대통령보다 2만5649표 더 많다. 깻잎 한 장 차이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일 것이다.
9월 11일 취임 100일을 맞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 60% 안팎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은 40% 대 중반, 국민의힘 지지율은 30%대 중반으로 두 당 간의 지지율 차이는 10% 안팎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금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여야간의 지지율 격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에 따른 반사효과라고 할 수 있는데, 그 효과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미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정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재명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특검을 앞세워 생각하기도 싫은 비상계엄을 국민들 머릿속에 계속 상기시켜줄 경우 분명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오늘 9월 11일은 이 대통령 취임 100일이기도 하지만, 미국 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로 무너지면서 3000명의 희생자를 낸 사건이 일어난 지 24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그 테러 현장을 ‘그라운드 제로’라 명명했다.
‘그라운드 제로’는 핵폭탄이 폭발해 흔적도 남지 않은 곳을 말하는 군사용어다. 현재 그라운드 제로 자리에는 104층 무역센터가 새롭게 세워져 있다.
‘그라운드 제로’는 세상 이치가 100이 됐다가도 0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를 담는 말로도 이해된다. 어떠한 권력도 영원하지 않는데, 제로가 되는 것을 막는 방법은 딱 하나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