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시장이 고금리로 인한 공급부족 현상이 발생하면서 집값이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비슷한 수준의 고공행진을 벌이면서 주택시장의 불안이 확산되자,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비상사태 선포’라는 초유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일반적으로 고금리 속에서는 주택수요가 줄어 집값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근래 미국은 모기지 금리 상승으로 주택공급자들이 줄면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집값이 뛰고 임대료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공급 물량이 없다 보니 청년들을 비롯해 집을 구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지역에서 집을 구할 수 없고, 그나마 임대를 구하려고 해도 도시 외곽지역에 높은 임대료를 부담하면서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트럼프 정부가 ‘주택 비상사태’를 선포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미국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단독주택 중간가격은 41만2500달러(약 5억7000만원)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미국은 지방 중소도시가 대부분이어서 대도시의 경우를 기준으로 하면 몇 배의 수준이 된다.
주택 공실률 역시 소유 기준으로는 1.1%에 불과해 사실상 집이 모자란 수준이고, 임대의 경우도 6.9%로 임대시장의 특성인 이동을 위한 충분한 물량에 훨씬 미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뉴욕을 비롯해 워싱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는 구할 수 있는 집이 아예 없는 형편이다 보니 이들 도시의 집값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는 형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미국의 부동산시장 흐름을 볼 때, 지난 2008년 9월 미국 유력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부터 시작된 금융위기가 재현될 것을 걱정하기도 한다
당시 미국 주택시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2000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집값은 50% 이상 상승했고, 2007년 집값이 꺾이기 시작하기 직전까지 미국 평균 집값은 80% 이상 상승했다. 그러다 2007년 들어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모기지 대출을 집중적으로 했던 리먼 브라더스가 부도를 맞게 된 것이다.
집값 상승 추세만 놓고 보면 현재 상황 역시 그때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2020 년부터 오르기 시작한 미국 집값은 2024년 47%를 넘어섰고, 현재 기준으로는 50%를 훌쩍 넘어선 상황이다.
이 와중에 베선트가 지난 지난 1일(현지시간) 워싱턴이그재미너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 주택시장의 심각성을 언급하면서 ‘주택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미국 주택시장 불안의 책임론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트럼프 정부는 현재의 미국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우선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의 금리인하 거부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트럼프는 파월이 현재 4.5% 수준의 기준금리를 1%대까지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대도시들의 상당수가 민주당 소속 시장 및 주지사인데, 이들이 건축허가를 잘 내주지 않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상당수의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풀린 유동성이 집값을 끌어올린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의 관세와 재정적자가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면서 특히 기준금리는 장기인 모기지 금리와는 관계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우선 관세 및 이민정책을 원인으로 든다.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50%, 캐나다산 목재에 대한 35.19% 관세 등으로 건축비가 급등했고, 이민자 추방으로 건설현장 근로자를 구할 수 없어 인건비가 급등하면서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이유로 미국 재정적자에 심화에 따른 장기국채의 고금리 현상을 꼽는다. 모기지론은 장기이기 때문에 금리 역시 장기국채 금리와 연동돼있는데, 장기국채는 중앙은행의 기준금리보다는 장기 인플레이션 가능성의 영향을 받는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5%이고 2일(현지시간) 기준 2년물 단기 국채 금리는 3.643%로 기준금리보다 낮지만, 30년물 국채 금리는 4.963%로 기준금리보다 훨씬 높다.
그렇다보니 미국 모기지 금리는 평균 6.625%인데 대도시의 경우 8%에 달하기 때문에 주택 공급이나 수요 모두 엄청난 이자부담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현재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과거 1%대의 모기지 금리로 돈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 집을 내놓고 새로운 집으로 옮길 경우 최고 8%의 금리로 갈아타야 하게 돼 집을 내놓을 수 없는 처지에 빠진 것이다. 결국 통상적인 주택 수요공급의 시장이 마비가 되다 보니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중단된 상황에서 수요 초과로 집값과 임대료가 폭등하게 됐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동산시장이 불안해지자 비상이 걸린 트럼프 정부가 ‘주택 비상사태’ 선포라는 비상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부는 ‘주택 비상사태’ 선포로 지방정부가 가지고 있는 건축허가권을 중앙정부에서 행사해 건축허가를 대폭 내주겠다는 속셈이지만, 현재의 상황이 건축허가 확대로 공급이 늘어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시장의 혼선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미 미국 주택시장의 불안을 파고들어 내년 11월 선거공약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신인 정치인도 나타났다.
미국 집값과 임대료가 가장 비싼 뉴욕 시장에 도전장을 낸 민주당 소속의 조란 맘다니는 선거공약으로 아파트 임대료 동결, 버스요금 무료, 시간당 임금 2배 인상을 내걸었다.
맘다니는 내년 11월 선거를 앞두고 이미 민주당 후보로 확정됐는데, 현재 여론조사에서도 인기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는 인도계 무슬림으로 1991년 우간다에서 출생한 34세의 청년 정치인이다. 뉴욕 시민들은 인도계 무슬림에 우간다 출생자라도 임대료 해결 공약으로 그를 다음 시장으로 뽑을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미국 주택시장 불안이 심각한 것이다. 관세폭탄과 이민자 추방으로 인한 미국 물가와 인건비 상승이 불러온 건축비 상승, 재정적자가 심한 상황에서도 확대재정을 편성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이 불러온 장기국채 금리 상승 현상이, 결국 미국의 집값 거품을 확산시켜 17년 전 서브프라임 모기지 발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 경제학자는 “트럼프가 무리하게 관세폭탄을 때리면서 국제 무역질서를 깨트렸는데, 결국 이러한 무너진 무역질서가 미국에 부메랑이 되면서 미국의 인플레이션으로 연결되고 이러한 전망이 미국 장기 국채 금리를 상승시키면서 모기지 금리가 올라간 것이다”면서 “트럼프가 MAGA를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부동산 발 악재와 물가 상승으로 내년 중간선거에서 패할 경우 미국은 큰 혼돈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