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정상회담 차 미국을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5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C) 초청 강연에서 탈 안미경중을 선언해 국제사회의 관심을 모았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안보는 미국과 함께 협력 하고 경제는 중국과 협력하면서 안보와 경제 양대 축을 지탱해왔다. 그래서 나온 말이 안미경중(安美經中)이다.
미국은 6.25전쟁 당시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에 미군을 주둔하면서까지 국방의 한 축을 담당해오고 있으니 당연히 안보는 미국과 함께 하는 것이고, 경제는 우리나라 수출의 주요 대상국으로서 그동안 많은 달러를 벌어들이게 한 주요 무역 대상국이 중국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굳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에 선언한 ‘脫 안미경중’은 우리나라가 실용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선언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 앞으로 이재명 정부의 외교 정책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보이면서 기대가 크지만, 한편으로는 우려감도 따른다.
이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C) 초청 강연에서 탈 안미경중 발언을 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을 높였다.
“한국은 안미경중 하는 나라냐”는 질문에, “한국이 안미경중 입장을 가져왔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다”면서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이다”라고 답변을 한 것이다.
질문자는 과거 이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중국이 대만 침공할 경우의 입장으로 ‘셰셰’ 발언을 염두에 두고 질문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이 대통령은 사드(THAAD) 철회를 주장해왔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는 친중 정치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번 한미 정상화담에서도 미국이 이 대통령의 정치적 성향을 점검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탈 안미경중 선언은 국제사회가 갖는 한국에 대한 불안감을 상당부분 불식시키는 계기가 되고, 지정학적인 리스크도 상당히 제거하는 효과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의 탈 안미경중 선언은 미국의 친중 지적을 일시적으로 벗어나기 위한 즉흥적인 발언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보름 만인 6월 19일 있은 신임 국정원장 청문회에서 이종석 후보자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의미하는 안미경중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국정원장이란 자리는 다른 어느 자리보다 대통령과 이념적인 공감대가 깊은 자리인 만큼, 이 원장의 발언으로 볼 때 이미 이재명 정부의 정책기조는 ‘脫 안미경중’이라는 실용외교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이재명 정부에 대해 가졌던 ‘반미친중’이란 이미지를 상당부분 해소시키면서 국내외 우려를 잠재웠다는 측면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방미 성과 중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제 우리나라의 무역구조를 보면, 경제에 있어서도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월등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무역흑자국 중 단연 1위가 미국이고 수출 총 규모에서도 미국은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라왔다.
2024년 국가별 무역흑자 규모를 보면, 미국이 560억달러로 단연 1위이고, 홍콩 328억달러, 베트남 299억달러, 인도 123억달러, 폴란드 78.4억달러, 튀르키에 77.4억달러, 싱가포르 76.5억달러, 멕시코 61억달러, 필리핀 58억달러, 라이베리아 52억달러 순이다.
중국은 무역흑자국 명단에 아예 없다. 중국은 2022년까지 무역흑자국이었지만, 2023년부터 무역적자 대상국으로 바뀌었다. 2023년 -180억달러, 2024년 -68.6억달러로 적자를 보였고, 올해도 상반기만 -69억달러로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대중 무역적자 기조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제조업 강국이 된 상황에서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져갔던 반도체, 컴퓨터, 디스플레이, 무선통신기기, 가전 등을 자체 생산하거나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 가져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첨단산업화에 따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2차전지 핵심소재 등 희토류의 수입은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어서 대중 무역적자는 갈수록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국이 석유화학제품을 국제시장에 덤핑을 치면서 우리나라 석유화학 기업들이 존폐의 기로에 서있고, 철강 시장에서도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이다. 앞으로 자동차,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 전반에서 한국과 중국은 세계 곳곳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
반면 미국은 제조업 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상황에서 중국에 맞설 수 있는 대안으로 한국이 절실하게 필요한 입장이어서, 한미 경제 협력 기회는 갈수록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대적 상황 변화를 볼 때, 이제부터는 이념 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탈 안미경중’ 속에 명분보다는 실속 중심의 정책을 본격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다.
다만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면서 중국과 거리가 생기는 등 국제 정세 변화를 잘 고려할 필요가있다. 여기에 미국도 중국과 대결 구도 속에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에게 손을 적극적으로 내밀 가능성이 높은 중국에 대해서도 좋은 협력관계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실용외교가 우선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좋은 기회의 장이 열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