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을 비롯해 망하가고 있는 보잉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전폭적인 지원을 쏟고 있지만, 자원낭비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인텔
돌발 변수가 우려됐던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첫 정상회담이 일단 끝났다. 양국간 무역협상과 관련해서 지난달 말 협상 이외의 추가사항이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가 지난번 협상 결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추가 혹을 붙이진 않았지만 반대로 최혜국 대우 등 선물도 받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이 보잉 여객기 103대 구매할 것을 약속하면서 보잉의 영업사원 역할을 하고 있는 트럼프에게 눈길이 가게 됐다. 각국들과 무역협상을 벌이면서 단골메뉴로 들어가는 것이 보잉사의 여객기 구매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외에도 EU와 일본도 각각 100대씩 구매를 약속했고, 최종 협상을 남겨둔 중국도 보잉 항공기 구매 수요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0여 년간 미국 산업을 이끈 핵심 기업은 보잉과 인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 기업 모두 지금은 미국의 애물단지가 돼있어서, 트럼프의 보잉과 인텔 살리기 노력이 과연 미국 산업생태계를 어떻게 바꿀 지에 관심이 모아지게 됐다.
보잉은 지난해 말 우리나라 무안공항에서 추락해 탑승자 181명 가운데 179명이 사망한 참사를 일으킨 항공기를 만든 기업으로, 보잉기는 전 세계 곳곳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일으키는 불안한 항공기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항공기 제작사다.
100년 이상 세계의 하늘을 주름잡았던 보잉의 슬로건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If it’s not Boeing, I’m not going(보잉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였지만, 지금은 If it’s Boeing, I’m not going(보잉이면 가지 않겠다)로 바뀔 정도로 신뢰를 잃었다.
과거 미국 제조기술의 상징이었던 보잉이 망가지게 된 계기는 1996년 미국 내 경쟁항공사인 맥도널더글러스사를 인수하면서 맥도널더글러스사의 해리 스톤사이퍼를 CEO로 앉히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스톤사어퍼는 구조조정 전문가였는데, 단기적인 이익을 내기 위해 고참 엔지니어를 대거 해고하고, 사업부를 줄이는 대신 대부분의 공정을 아웃소싱으로 돌렸다.
강력한 구조조정과 아웃소싱 덕에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1년 연속 흑자를 이어갔지만 기술력결함이 회사의 약점으로 드러나고 외주비용 부담으로 2019년부터 연속 적자행진을 벌이고 있다.
기술력 부족이 기체결함으로 이어지면서 곳곳에서 보잉기가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나자 그 여파로 항공기 운행금지조치 등이 나오면서 2019년 최악의 경영성과를 냈다. 2018년 104억 6000만달러의 순이익에서 2019년 6억3600만달러 순손실로 돌아섰고, 2020년 118억7000만달러, 2021년 42억달러의 순손실을 각각 기록했다.
보잉의 실적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적자행진을 벌이고 있다. 올 2분기에도 6억 9700만달러 순손실을 기록해, 2025년 2분까지 누적 순손실은 8억2000만달러에 이른다. 2024년에는 연간 118억3000만달러 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단기간의 이익에 눈이 먼 CEO가 회사 기술자들을 내보내고 아웃소싱하면서 자체 기술력에 구멍이 생기면서 기업의 자생력이 떨어진 것이다.
또 하나의 애물단지가 된 인텔에 대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1968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인텔은 무어의 법칙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초창기 메모리 시장을 독점하다가 70년 대 일본 반도체기업들과의 치킨게임을 포기하고 CPU에 주력하면서 2010넌대까지 세계 CPU 시장 90% 이상을 점유한 독보적인 기업이었다.
‘Intel inside’란 마크가 품질보증의 상징으로 자리잡을 정도였으니 이름만으로도 세계 컴퓨터시장을 장악했던 미국의 자존심이었다.
그러나 인텔 역시 단기 실적에만 몰입한 브라이언 크르자니크가 2013년 CEO로 부임하면서 회사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당장의 실적을 위해 핵심 연구인력 12%를 정리해고 한 것이 기술력 저하로 이어지면서 새로운 제품 개발이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인텔을 떠난 핵심 인재들 상당수가 경쟁사인 AMD를 비롯해 삼성전자, TSMC 등으로 이직하면서, CPU 시장에서 AMD의 추격을 허용하게 된 것이다. 2010년대까지만해도 세계 CPU 시장의 90% 이상을 인텔이 점유했지만, 현재는 60% 아래로 내려갔고, 그 자리를 AMD가 채우고 있다.
독점적 위치에서 엄청난 이익을 내다보니 오만해지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에 소홀하고 변신에도 실패했다.
컴퓨터를 대신하는 모바일 분야 성장 추세를 내다보지 못한 인텔은 2006년 스티브잡스가 인텔에 모바일용 AP칩 개발을 요청했지만, 그때까지 만해도 수요가 적은 AP에 관심을 갖지 않고 거절하면서 모바일 중심의 반도체시장을 놓치게 됐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모바일용 AP 제조를 퀄컴에 맡겼다.
2005년에는 당시 현재 반도체 최대 강자인 엔비디아를 싼 가격에 인수할 기회가 있었지만, 당시 시장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인수 거절하면서 AI시장에 진출할 기회도 놓쳤다.
뒤늦게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에 발을 디뎠지만 실적이 나오지 않자 2018년 철수했다가 2021년 다시 재진출하면서 엄청난 돈만 날렸다. 2023년 자회사로 독립시킨 상황이지만 누적적자가 심각한 상황이다.
인텔 역시 순손실 행진을 벌이고 있다. 올해 2분기 29억1800만달러 순손실을 기록했는데, 올해 누적 순손실은 37억3900만달러에 달한다. 2024년 연간 순손실은 188억달러(한화 약 26조원)에 달했다.
이런 인텔을 트럼프가 살리겠다고 지원에 나선 것이다. 바이든 정부 때 시행한 ‘반도체법’에 따라 정부 보조금 109억달러(약 15조1000억원)을 지원하는 대신 미국 정부가 지분으로 받기로 한 것이다. 결국 인텔을 국가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속셈인 것이다. 미국 정부가 지원금 대신 지분을 받게 되면 인텔 지분의 10%를 보유하게 돼 단일 최대주주에 등극하게 된다.
기업에게도 수명이 있다. 때가 되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기업이 자리를 잡아야 시장의 선순환이 이뤄진다. 트럼프는 망해가고 있는 보잉과 인텔을 억지로 붙들면서 시장의 원리를 왜곡시키고 있다.
과연 그 결과가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매우 궁금하다. 확실한 것은 한번 좀비가 되면 정상적인 기업으로 되살아나는 데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른다는 것이다. 수명이 다한 기업은 밀려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기업이 들어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기술력을 상실해 세계 곳곳에서 떨어지는 비행기를 만들면서 손해장사를 하는 보잉과 이미 생명력을 다 한 인텔을 살리겠다는 트럼프의 판단으로 미국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