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에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직원들이 불법근로자들을 수갑과 쇠사슬로 묶어 체포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현대-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근로자들 475명 중 한국인 300여 명이 불법체류 혐의로 미국 이민세관단속국에 체포돼 구금된 사건이 일단 외교적인 노력으로 일단락 되는 듯 보이지만, 석방 및 귀국과 관련 미국 측과 한국 측 해석에 온도 차가 있어서 향후 해결 과제를 남겨놓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이 공장에서 지난 2년 간 3명의 근로자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합법적인 근로자 65명을 해고한 것에 대해 현지 관계 기관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그 결과에 따라 더 큰 문제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현재 조기중 워싱턴 총영사 등 한국 측은 석방 및 국내 귀국과 관련해 행정적·기술적인 상황에 대해 미국 쪽의 협조를 받아 준비 중이며, 정부는 이들을 '자진출국' 형식으로 출국시키면서 이후 입국 제한 같은 불이익이 없도록 미국 정부 측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방미중인 조현 외교부 장관이 9일(현지시간) 중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과 만나 관련 논의를 매듭지을 것으로 기대되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측의 반응이나 미국 언론 보도는 우리의 낙관적인 관측과는 거리가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일단 이번 사태의 주무 장관인 미국 국토안보부 크리스티 놈은 현재까지도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들에 대해 ‘강제추방’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측이 ‘자진출국’이라면서 미국 재입국에 문제가 없도록 하겠다는 자신감과는 거리가 있다.
불법 근로에 따른 ‘강제추방’ 쪽에 무게를 싣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
로이터(Reuters)는 “한국 정부가 구금된 자국민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번 단속은 “불법 고용 관행 및 심각한 연방 범죄에 대한 혐의와 관련된 형사 수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강제추방”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현지 자동차 전문지인 Automotive Logistics는 “이번 475명의 노동자 체포로 인해 현대차의 메타플랜트 생산에는 영향이 없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건설작업은 중단돼 공기 일정에 차질이 생기게 됐다”면서 “이번 단속은 불법 고용 관행에 대한 수사와 관련해 수색영장이 집행된 결과로서 형사 기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외에도 AP(Associated Press), NDTV, Global News, The Washington Post, Jackson Walker LLP(로펌 전문지), The Current GA (조지아 지역 언론), Spaulding Injury Law (로펌 블로그), World Socialist Web Site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이 사건을 다루며, ‘강제추방’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법체류 근로활동 외에도 근로자 사망사고와 부당해고에 대한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현지 노동전문 매체인 Payday Report는 “이번 이민 단속이 이루어진 현대차 공장 건설 현장에서 2022년 이후 최소 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는데, 특히 빅터 감보아, 선복 유, 앨런 코왈스키의 사망 사고와 관련해서는 산업안전보건청(OSHA)이 조사 및 하도급 업체에 대한 안전 위반사항을 조사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단속이 오히려 이민 노동자들이 작업장 문제를 제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는 “이민 단속보다는 노동 안전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는 조지아주 노동조합의 입장을 인용 보도했다.
근로자 사망사고와 관련해서는 미국 건설전문지 ENR과 AJC도 보도했는데, “지난 2년간 공사 현장에서 3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가장 최근에는 지난 5월, 27세 노동자가 지게차 사고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 공장에서 65명이란 대규모 근로자가 부당해고 됐다는 내용도 보도됐다. 월스트리트와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현지 노조인 U.A Local 188(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와 그 주변 지역을 관할하는 배관공(plumbers) 및 배관 설비공(pipefitters) 노동조합)은 조지아 공장에서 합법적인 신분의 용접공과 배관공 65명이 부당하게 해고됐고 그 자리에 불법 노동자들로 채워졌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U.A Local 188’은 미국 배관 및 배관설비 산업의 직원 및 견습생 연합회의 조지아 지부로서 조합원들에게 5년 간의 견습 프로그램과 숙련공을 위한 평생 교육, 안전 훈련, 다양한 복지를 제공하는 노동조합이다.
이와 같은 미국 내에서의 보도 내용을 볼 때 조지아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은 대규모 불법 체류 근로자의 강제추방이냐 자진출국이냐의 차원보다 더 복잡한 부당해고와 중대 사망사고 등의 문제에 직면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진출국의 경우에도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재입국이 가능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미국의 시스템을 감안할 때 실현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이 경우 미국이 불법취업이 아닌 근로자를 실수로 체포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해줘야 하는데, 현재 이들 근로자들이 발급받은 비자가 B-1과 ESTA(전자여행허가비자)여서 현지 공장에서 근로활동 할 수 없게 돼있어 미국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측은 이들 근로자들이 급여를 미국 현지에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받기 때문에 현지 취업활동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 측이 이를 받아들여주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에 구금된 근로자 중 30여 명은 정식 취업비자인 H-1B나 H-2B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런 처벌 없이 풀려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불법취업 관련 사태가 정리되면, 현지 관계기관에서 조사 중인 근로자 사망사고와 대규모 무단 해고 등 관련 조사와 그에 따른 책임으로 인해 공사 일정이 상당기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산업계의 한 전문가는 “강제추방이 아닌 자진귀국이라는 포장을 가지고 재입국이 가능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것을 자제할 필요가 있고, 현지 공장에서의 근로자 사망사고나 부당해고 등 많은 문제점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알리고 개선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정부나 해당 기업은 문제점을 쉬쉬 하지 말고 이제 정확한 실체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민과 함께 고민해야 미국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고 짚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