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알리바바가 자체적으로 새로운 AI 칩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칩보다 더 범용성이 높고 더 다양한 AI 추론 작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미국 엔비디아에 비상이 걸렸다.
불교에 자업자득(自業自得)이란 말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의미로 내가 벌인 일은 결국 내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바둑 용어에 자충수(自充手)란 말도 있다. 자기가 놓은 돌로 자기의 수를 줄이는 일을 벌였을 때 쓰는 표현으로, 일반적으로 잔꾀를 부리다가 결국 자기 일을 그르치는 자기 손으로 자기 발등을 찍는 경우를 빗댄 경우에 쓴다.
요즘 미국을 중심으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트럼프가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세계 정치·경제는 그야말로 미국 중심의 패권주의에 빠졌는데 그패권주의 강조가 바로 자충수가 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를 줄여보겠다고 대중 관세를 100% 이상 때리자, 중국도 같이 맞불을 놓았고, 대중 반도체 및 IT 수출을 중단하자 중국은 대중 희토류 수출 금지로 맞섰다. 트럼프가 되로 공격하고 말로 반격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거기에 중국에서는 이번 기회에 미국의 반도체 그늘에서 벗어나겠다고 자강(自强)바람에 불기 시작했다.
미국이 중국으로 수출하는 AI용 반도체는 H20 이었는데, 이것을 트럼프가 지난 4월에 대중 수출 금지품목에 포함시켰다. 주로 엔비디아가 수출하는 품목이었는데, 엔비디아 젠슨황이 트럼프와 협상을 벌여 지난 7월 수출 재개 허락을 받았지만, 그 새 중국이 H20 수준의 반도체 칩을 개발해 이제는 오히려 보안을 이유로 중국이 H20 수입을 거부하는 상황이 됐다. 이 바람에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 80억달러가 날라갔다.
지난달 말에는 중국의 알리바바가 자체적으로 새로운 AI 칩을 개발했다고 외신이 밝혔다. 기존 칩보다 더 범용성이 높고 더 다양한 AI 추론 작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알리바바는 대만의 TSMC에서 AI칩을 공급받았는데 이를 중국 내 기업을 통해 조달 받는다고도 밝혔다. 알리바바는 중국 최대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으로, 그동안 AI 칩 선두 주자 엔비디아의 주요 고객사 중 하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엔비디아 주가는 8월 마지막날 3% 넘게 급락했다.
어떻게 보면 현재 미국 산업 경쟁력의 상당부분은 엔비디아가 끌고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엔비디아가 만드는 AI칩을 구글, 아마존, 메타 등등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들을 비롯해서 전 세계 AI 기업들이 갖다 쓰면서 엔비디아가 세계 AI 시장을 호령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엔비디아의 아성이 중국 기업들에 의해 무너질 기미가 생긴 것이다. 엔비디아의 위기는 미국의 위기다.
중국은 이미 내년도 AI용 반도체 생산량을 현재의 3배로 늘릴 계획임을 밝혔다.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인 캠브리콘을 포함해 화웨이, SMIC, CXMT, 나우라 등 반도체 기업들이 대대적인 생산시설 확충에 나서고 있다.
머지 않아, 블렉웰 같은 고사양 AI반도체칩 외의 저사양 반도체칩은 중국이 자체 조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고사양 반도체도 머지 않아 중국이 자체 조달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아직 검증을 완전히 마치지 않았지만, 지난 4월에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중국 오픈 AI인 ‘딥시크’와 중국산 AI반도체의 조합이 완결될 경우 말 그대로 미국과 중국은 본격적인 패권전쟁에 돌입하게 된다.
엔비디아와 함께 또 하나 미국의 자존심은 테슬라다. 전기차로 시작해서 우주산업에까지 영역을 넓혀가는 민간 최대 우주산업 개발 회사다. 테슬라는 현재 본업인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서 외면 받으면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밀리고 있다. 트럼프가 전기차 대신 석유차를 장려하면서 미국 내에서 전기차 산업이 시들해졌고, 그 여파가 글로벌 시장에 미쳤기 때문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가 중국 전기차에 밀리는 현상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 최대 시장 중 한 곳인 유럽에서 테슬라의 후퇴가 두드러지고 있다. 지난 7월 유럽 전체에서 판매된 테슬라의 판매량은 8837대로 전년 같은 기간 1만4769대보다 40.2%나 감소했다.
반면 중국의 BYD는 7월 한달간 1만3503대를 판매해 전년 같은 기간 4151대에 비해 225.3% 폭증했다. 유럽 전체 자동차 시장 점유율을 보면 테슬라가 지난해 1.4%에서 0.8%로 줄어든 데 반해 BYD는 0.4%에서 1.2%로 늘어났다. 두 회사가 완전히 자리바꿈 했다.
미국이 전기차를 홀대하면서 위축되는 가운데 유럽의 전기차 시장은 매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 7월 유럽 전기차 판매량은 총 18만6440대로 1년 만에 33.6% 증가하는 등 매년 증가폭을 키우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이제 7개월 열흘 지났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중국에 반도체 기술을 비약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의 추격을 뿌리친다는 것이 오히려 중국에게 기회의 장을 열어줬다. 이것이야말로 자업자득이고 자충수다.
트럼프가 수출을 끊으면서 중국이 몇 년 걸릴 기술개발을 몇 개월 만에 이뤄내고 있다. 중국은 모든 국력을 반도체 기술개발에 쏟아 부으면서 시간을 비약적으로 당겼다.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미국 대법원에서까지 위헌 반정을 받을 경우 세계는 대 혼란이 일고, 미국은 그동안 챙긴 상호관세를 받은 나라들에게 돌려줘야 할 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세상의 이치를 모두 깨달은 것처럼 착각하는 가운데, 미국이 멍들어가고, 그 대신에 미국을 대신할 선수들이 곳곳에서 자라는 기회의 장이 열리게 됐다. 당장은 여러 나라들이 힘들겠지만, 그 힘든 것을 거름으로 새로운 스타들과 새로운 질서가 생겨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