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 여론집중도조사위원회가 8월 29일 발표한 '2022∼2024 여론집중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매체별 여론영향력 가중값(점유율)은 종편이 28.3%, 지상파 25.0%, 뉴스통신·보도전문채널 23.4%, 신문 12.3%로 조사됐다.

여론조사에서 '모르겠다'나 '의견 없음'이라는 응답을 받으면 조사 담당자들은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응답률이 낮아지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주제들에서는 이런 응답이 오히려 바람직하고 건전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는 지표가 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전문적인 사안에 대해 성급한 판단보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복잡한 정책 사안

통화정책이나 첨단기술 규제, 국제 무역 협정과 같은 주제들은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갈리는 복잡한 사안들입니다. 이런 분야는 경제학, 기술, 국제법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며, 다양한 변수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어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정책에 대해 일반 시민들에게 찬반을 묻는다고 가정해봅시다. 금리 인상이나 인하는 인플레이션, 고용, 환율, 부동산 시장 등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며, 그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납니다. 이런 복잡한 메커니즘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단순히 찬반을 표명하는 것보다는 '모르겠다'고 답하는 것이 더 정직하고 합리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한된 정보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

국가 안보와 관련된 사항이나 진행 중인 수사 사건과 같이 충분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사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가 보안상의 이유로 세부 사항을 공개할 수 없거나, 수사기관이 수사의 밀행성을 위해 정보를 제한적으로만 공개하는 경우, 일반 시민들은 단편적인 정보만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견 없음'이라는 응답은 성급한 판단을 피하고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되기를 기다리는 신중한 태도를 반영합니다.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여론이 잘못된 방향으로 형성되는 것보다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윤리적 딜레마가 포함된 문제들

생명윤리나 종교적 신념과 관련된 문제들은 개인의 가치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명확한 정답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의 생명체 인정 여부, 유전자 편집 기술의 윤리적 허용 범위, 종교적 신념과 세속적 법률 사이의 갈등 등은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복잡한 윤리적 문제들입니다.

이런 주제들에 대해 '모르겠다'는 응답은 문제의 복잡성을 인정하고, 더 깊이 있는 성찰과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성급한 판단보다는 다양한 관점을 고려하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장기적 영향 예측이 어려운 정책들

기후변화 대응정책이나 교육제도 개혁과 같이 그 효과가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나는 정책들도 현재 시점에서 확신을 가지고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이런 정책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영향을 미치며,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개입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예를 들어 탄소세 도입이나 대학 입시제도 개편과 같은 정책들은 즉각적인 효과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사회 변화를 고려해야 합니다. 현재 시점에서 이런 정책의 성공 여부를 단정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려우며, '의견 없음'은 이런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현실적인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한 주제들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들의 경우, 찬반 의견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런 주제들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찬반보다는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더 건설적일 수 있습니다.

'의견 없음'이라는 응답은 어느 한쪽 편을 들기보다는 중립적 입장을 유지하거나, 더 많은 숙고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을 관리하는 하나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높은 '의견 없음' 비율이 주는 의미

이러한 경우들에서 '의견 없음' 응답이 많다는 것은 여러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첫째, 시민들의 지적 겸손함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신중한 태도입니다.

둘째, 신중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암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확신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해당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정보 제공과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셋째,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일반 여론만으로는 복잡한 정책을 결정하기 어려우며, 해당 분야 전문가들의 깊이 있는 분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대안적 조사 방법론의 필요성

일반적인 여론조사가 적절하지 않은 주제들에 대해서는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숙의 여론조사는 그중 하나의 대안입니다. 이 방법은 참여자들에게 충분한 정보와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전문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포함하며, 참여자들 간의 토론과 숙의 과정을 거칩니다. 정보를 접한 후의 의견 변화를 측정할 수 있어 더욱 신뢰할 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 패널 조사도 유용한 방법입니다.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복잡한 정책의 장단점을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델파이 기법과 같은 방법을 활용하면 전문가들의 의견을 체계적으로 수렴할 수 있습니다.

시민 자문단이나 시민배심원제도 고려해볼 만한 방법입니다. 일반 시민들 중에서 대표성 있게 선발된 사람들에게 충분한 학습과 토론 기회를 제공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통해 정책 결정에 시민들의 숙의된 의견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혼합적 접근의 효과

전문가 조사와 일반 여론조사를 병행하는 혼합 방식도 효과적입니다. 각각의 결과를 상호보완적으로 활용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는 것입니다. 또한 단계적 접근을 통해 초기에는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고, 쟁점이 정리된 후에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러한 대안적 방식들은 더 신중하고 깊이 있는 논의를 가능하게 하고, 정보에 기반한 판단을 촉진하며, 단순한 찬반을 넘어선 다양한 관점을 고려할 수 있게 해줍니다. 결과적으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더 효과적이며, 정책의 질적 향상과 시민들의 정책 이해도 제고, 더 나은 사회적 의사결정과 정책에 대한 수용성 증가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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