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수저는 자산이나 소득 모두 취약한 계층을 말하며 무주택 또는 전월세 거주가 일반적이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자녀는 학자금 대출, 월세 자립, 취업·결혼 모든 단계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흙수저 수저 자체보다, 그 수저가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의 삶을 보면 ‘자기 책임 의식의 결핍’이 보인다. 평소 “분노하라!”를 일상의 핵심 언어로 삼고, 불평과 불만의 시간을 보낸다. ‘자기 책임 의식이 없는 사회’가 바로 사회주의 성향의 국가인데,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지역은 경제적으로 낙후돼 있고 발전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흙수저인 사람들은 대체로 화를 자주 내며, 남 잘되는 꼴을 못 보고, 책이나 뉴스보다 가십에만 빠져 있으며, 댓글에 욕부터 단다. 진실을 말하면 화를 내고, 할 말이 없으면 욕을 한다
흙수저인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며, 경제 현상에 있어 ‘사회주의 사고방식’을 신봉한다.
다음 사례를 보자.
첫째 투자 이야기가 나오면 사기라고 단정한다. 이들에게 투자는 도박이고 투기이며 사기의 다른 이름이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즉각적으로 경계심을 드러내며 위험성만을 강조한다. 이러한 반응은 단순한 보수성을 넘어서 새로운 기회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감에서 비롯된다.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 시스템에 대한 이해 부족과 더불어 실패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들은 은행 예금만이 안전하다고 믿으며 인플레이션이 자신들을 자산을 서서히 갈고 먹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투자자를 투기자로 몰아붙이며, 부자들은 모두 투기꾼이라고 여긴다. 옛소련, 옛중국, 북한에서 부자들을 때려잡기 했는데, 그 결과 이들 국가는 가난과 비참의 일상화를 겪은 나라가 되었다.
둘째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는 말로 모든 문제를 덮어 버린다. 이 말은 그대로 만능 방패막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인생의 정체에 대한 질문이 제기될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멘트다. 열심히 살아온 것 자체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의 방향과 효율성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점이 핵심이다. 시대의 변화를 잊지 못하고 과거의 성공 방식에만 의존하면서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모든 것을 정당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전략적 사고보다는 전술적 부지런함에만 집중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보다는 과정에서의 성실함만을 강조한다.
땀을 흘리면 무조건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방향이 잘못되면 헛짓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왜 사회주의에서 스타하노프운동(소련), 대약진운동(중국), 천리마운동(북한)이 있었는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그런 노력동원을 하지 않았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면 알아서 열심히 하기 때문이었다.
셋째 자동차를 함부로 할부로 사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 자동차는 필수품이라는 인식하에 할부는 당연한 선택지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할부의 진짜 비용을 제대로 계산하지 않는다. 이자율과 기회 비용에 대한 개념이 희미하며, 월 납입 금액만을 기준으로 구매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더 심각한 것은 자동차라는 감가상각 자산에 대해 투자 관점이 아닌 소비 관점으로만 접근한다는 점이다. 대중교통이나 카셰어링 같은 대안적 이동 수단에 대한 고려 없이 관습적으로 자가용 소유를 당연시하는 사고 패턴을 보여준다. 즉 빚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다. 개인이나 나라 재정 모두에 대해 그런 경향이 있다.
넷째 자식의 성취보다 이웃집 흉보기에 더 관심이 많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가정을 발전시키는 일보다 남의 집 사정을 파악하고 비판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이웃의 실패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을 통해 상대적 우월감을 느껴야 한다. 이런 행동은 결국 자신의 성장 동력을 소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남을 끌어내리는 일에 집중하면서 정작 자신과 가족을 끌어올리는 일에는 소홀해진다. 건설적인 경쟁의식 대신 파괴적인 질투심의 일상을 지배하며 이는 자녀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경쟁은 나쁜 것이라고 여긴다. 경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라는 걸 모른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지역을 보면 산업을 스스로 발전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정부 예산 끌어 오겠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 예산으로 매년 적자를 양산은 시설을 만드는데, 광주전남에 가보면 아시아문화전당, 무안공항, 영암F1경기장 등이 있다. 무안공항은 한화갑 공항으로도 불리는데, 엉터리 공항을 추진한 호남 정치인 중 누구 하나 반성하지 않는다.
다섯째 무의식적으로 세상 탓, 부모 탓, 자식 탓을 입에 달고 산다. 책임의 외부화는 이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다.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항상 외부 요인을 탓하며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에 대한 책임은 회피한다. 경제가 어려우면 정부 탓, 자식이 말을 안 들으면 학교 탓, 사업이 안 되면 운이 나쁘다고 탓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문제 해결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외부에 있다고 믿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개선을 위한 능동적인 노력을 차단한다. 피해자 의식에 젖어 있으면서도 정작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는 모순적 태도를 보인다.
여섯째 자식이 꿈을 말하면 “그걸로 밥 먹고 살겠냐”고 비웃는다. 현실성이라는 명목 하에 자녀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안정성만을 추구하다 보니 창의성과 도전 정신을 위협 요소로 인식한다. 이들이 말하는 현실은 사실 자신들이 경험한 제한된 세계일 뿐이다. 급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직업과 기회들이 무수히 생겨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잣대로만 미래를 재단하려 든다. 자녀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며 이는 결국 자녀의 자존감과 도전의식을 훼손시킨다. 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를 잘 하지 않는다.
일곱째 불로소득은 나쁜 것이라 주장하며 오직 노동으로 번 돈만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근로소득만이 유일하게 도덕적이고 정당한 수입원이라고 믿는다. 자본 소득이나 금융투자를 통한 수익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며 노동의 신성함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런 사고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다. 돈이 일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며 현명한 투자는 사회적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는 행위라는 점을 간과한다. 결과적으로 자산 증식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며 평생 노동에만 의존하는 경제적 취약성을 만들어 낸다. (소득을 높이려면 땀 흘린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지식을 높여 몸값을 높이는 것, 그리고 투자를 통해 투자소득을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한다. 이걸 생각하지 않으니, 옛날 김제동처럼 ’목수와 판사의 망치값이 왜 다른가?‘라는 헛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래놓고 본인은 별 내용도 없는 강의를 하면서 천 만원 이상씩 받아갔고...
여덟째 정치 성향은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기울어져 있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재단하며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반대편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반대를 표명한다. 정책의 실질적 효과나 장단점보다는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사고한다. 이런 극단적 정치 성향은 일상생활에서도 경직된 사고를 만들어 내며, 다양한 관념을 수용하는 유연성을 차단한다. 정치적 소속감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자신만의 독립적 판단력을 키우는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을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