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5일 OBBBA에 서명하고 즐거워하고 있다. 사진=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이 있은 지 4일 만에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에 대한 미국산 장비 반입 관련 VEU(Validated End User, 검증된 최종 사용자)을 박탈하고, 앞으로 미국 장비를 도입할 경우 매번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본지에서 여러 번 강조했던 것처럼, 한미 무역협정은 끝난 것이 하나도 없고 한미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이제 시작인 것이 거의 맞게 돌아가는 양상을 보이면서, 앞으로 닥쳐올 파도를 어떤 대책으로 헤쳐나갈 지 참으로 암담한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지난 바이든 정부 시절 우리나라는 VEU 자격을 인정받아 중국에 들어가는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일일이 신고하거나 허가절차를 밟지 않아도 됐지만, 이번에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한국의 VEU 자격을 박탈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중국에 진출한 기업 중 이번에 VEU 박탈 대상은 인텔반도체 유한공사(다롄 소재)와 삼성반도체 유한공사. SK하이닉스 반도체 유한공사 등 3곳인데, 이 중 인텔반도체 유한공사는 SK하이닉스가 인수했기 때문에 모두 우리나라 공장들이 해당되게 됐다.
해당 공장은 삼성전자의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 SK하이닉스의 다롄 낸드플리시 공장과 우시 D램 공장으로 이들 공장 모두 범용메모리 생산기지에 해당된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삼성전자 시안 낸드플래시 공장에서 회사 전체 낸드플래시의 36%를 생산하고, SK하이닉스의 다롄 낸드플래시에서는 회사 전체의 37%를 생산할 정도로 비중이 큰 공장이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전체 D램 중 HBM 비중이 44%인데 이 부분은 모두 한국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범용 D램 56% 가운데 상당부분을 중국 우시 램 공장에서 생산한다.
두 회사 모두 비상이 걸렸고, 결국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에 큰 악재가 발생했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미 지난 6월 중순 미국 상무부 체프리 케슬러 산업·안보 담당 차관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에 미국산 장비의 중국 반출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통보했기 대문에, 그동안 2달이 넘도록 전혀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을 두고 우리 정부와 해당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책임론이 불거지게 됐다. 일단 이번에 TSMC는 명단에서 빠졌다.
이번 조치는 바이든 이전의 시점으로 돌아간 것으로 봐야 하는데, 트럼프 1기 때는 미국이 반도체 보안을 앞세워 중국 내 반도체 공장에서 128단 이상의 고사양 낸드플래시를 위한 미국 장비 반입을 금지했지만, 바이든 시절 이 기준을 200단 이상에 대해서도 VEU 자격을 부여하면서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을 236단 공정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고, 현재 반도체 장비를 미국으로부터 반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SK하이닉스 역시 마찬가지로 업그레이드 낸드플래시 공정을 위해 삼성전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에 이어 우리나라 기업들이 1500억달러의 추가 투자를 약속하면서 결국 5000억달러의 투자약속을 한 상황에, 1000억달러의 에너지 수입까지 트럼프가 입을 벌릴 때마다 혹이 하나씩 늘어가는데,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미국이 우리나라 투자금으로 미국에 진출한 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너무 황당한 상황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우리 기업들의 지분을 인수해 결국 미국 내 진출한 생산공장을 뺏어가겠다는 꼼수에 말린 처지가 됐다.
낸드 플래시의 상당부분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 공장을 마비시켜놓고, 결국 그 공장들을 미국으로 옮기라는 속셈으로 보이고, 미국으로 옮긴 다음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우리나라 정부가 미국에 투자한 자금으로 지분을 인수해 미국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꼼수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가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제안한 ‘마스가’ 때문에 한화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조선사들이 미국에 진출할 수 밖에 없게 됐고, 결국 우리나라가 조성할 마스가 투자금 1500억달러를 가지고 미국은 이들 공장의 지분을 갖게 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이 마스가 투자금으로 한화 필리조선서 지분 인수 뜻을 밝혔다.
조선 다음으로 이번에 반도체가 당했다. 다음은 제약바이오 CDMO(제약 위타생산)분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제약바이오 설계와 특허는 세계 1위지만 의약품 제조는 모두 해외의 CDMO에 의뢰해 위탁생산하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세계적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상호관세에 대해 미국 항소법원에서도 위헌 판정이 났고, 트럼프는 대법원에 상고할 예정으로 오는 10월 이후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상호관세가 최종 위헌 판정을 받게 될 경우 트럼프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들어 품목별 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럴 경우 미국에 약속한 투자금은 그대로 유지된 채 품목별로 다시 협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된다. 더 많은 혹이 대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이러한 미국의 흉측한 속내를 간파한 중국이나 브라질, 인도 등은 협상에 임하지 않고 있다. 반대로 그들 나라들이 뭉치고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글로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가운데 가장 가까운 우방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EU를 두들겨 패서 미국 내에서 본인의 입지를 살리고 있다.
지금까지 트럼프를 보면, 중국에 대해서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를 하고 비교적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인도와 브라질에 대해서는 50% 관세를 때려 강한 척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점점 트럼프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오는 9월 3일 열리는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러시아의 푸틴, 북한 김정은이 참석해 북중러 회동이 이뤄질 예정이다. 전승절에 앞서 중국 톈진에서 ‘2025년 상하이협력기구(SCO)’가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열리고 있는데, 여기에는 모디 인도 총리,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마드불리 이집트 총리를 비롯해서 수십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해 미국 성토의 장이 되고 있다.
주요 관심사는 역시 미국 트럼프의 상호관세 등 관세폭력에 대한 공동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력 있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만들고 비중을 늘려간다면, 미국 내에서 관세는 면제받겠지만, 미국의 엄청난 인건비, 자재비, 노동조건, 법적인 리스크 등으로 기업들은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트럼프는 일단 이들 공장을 뺏어가 무너진 제조업을 부흥시켰다는 명분을 만들어 법을 바꿔서라도 재선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 게임에 자칫 한국이 제물이 될 판이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 경제와 산업이 백척간두에 서있다. 함부로 발을 디디지 말고 신중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고, 주변 국들의 움직임도 보고 일본과도 연대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의 무역협상은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올 연말까지가 고비인 만큼 대미 협상에 모든 국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