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이 2020년 10월부터 3년간 미국 일리노이·텍사스주의 저소득층 1000명에게 매달 1000달러를 조건 없이 지급했고, 비교군 2000명에는 월 50달러만 제공했다. 그 결과, 실험군은 대조군에 비해 연간 총소득이 약 2000달러 감소했고, 노동시장 참여율은 3.9%포인트 하락했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언어에는 이데올로기(ideology)가 담겨 있다.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다. 개인들마다 갖고 있는 세계관 종교관 가치관 사상 사고방식 등 믿음의 체계와 생각의 체계를 의미한다. 언어가 이처럼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보니, 같은 사안도 어떠한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각도에서 해석될 수 있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을 빌리면,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생각의 한계가 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어떠한 개념이 그 내면에 쉽게 생각하기 힘든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일상적으로 접하는 단어 가운데 소득(income)이 있다. 국민소득이나 기업소득,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소득의 불평등 등은 뉴스와 사적인 대화에서 많이 거론된다. 여기서 소득은 개인이나 기업이 일정한 기간에 걸쳐 노동이나 자본, 땅 등을 투입해 경제활동을 한 후 얻는 벌이를 의미한다. 일년 동안 국민 전체가 벌어들인 소득이 전체 국민소득이며, 개인이 일년 동안 회사에 다니고 받는 소득을 모두 합한게 연봉이 된다. 소득에는 대체로 ‘일한 만큼 받는 대가’라는 일반적인 믿음이 깔려 있으며, 이념적으로 편향된 측면이 없다.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기본소득은 기본과 소득을 합친 단어이다. 기본소득(基本所得, basic income guarantee, basic income, citizen’s income)은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근로 여부나 근로할 의사와 관계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똑같이 주는 소득을 말한다.
소득이란 단어에는 근로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으로 느껴지는 반면, 기본소득은 근로와 관계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기본소득이라는 단어에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포함돼 있다. (돈의 성격상 기본소득보다는 기본수입이라는 게 더 타당한 표현으로 느껴진다) 돈을 받는 개인으로서는 돈이 들어오니까 소득이 확실한데, 돈을 지급하는 국가(궁극적으로 세금)로서는 일하지 않아도 주는 만큼 복지가 된다.
기존의 복지가 어려운 사람을 가려서 도와주는 맞춤형(선별적)복지인 반면,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일률적(보편적)복지가 된다.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보육이 결국 세금으로 걷은 돈인 재정에서 지급되는 재정교육 재정급식 재정보육과 동일한 의미인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세계적으로 평등과 권리를 더 중시하는 진보진영에서는 기본소득을 환영하는 반면, 자유와 책임을 더 중시하는 보수진영에서는 포퓰리즘 공약이라며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단어 자체가 ‘소득이 아니라 복지’이며, 복지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념적 대립의 한복판에 놓이게 된 것이다. 특히 복지는 한번 시작해 국민들이 그 단맛을 보고 나면, 축소하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성격이 있다. 기본소득은 전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므로 그 파괴력이 너무나 크다.
기본소득은 최근 급부상한 이슈이지만 역사는 매우 오래됐으며, 진보적인 생각을 갖는 사람들이 주로 이러한 의견을 많이 냈다. ‘유토피아’의 작가인 토머스 모어는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방안은 사형이 아니라 소득의 보장이라고 주장했다.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게 국가와 위정자의 책무라고 본 것이다. 18세기 말의 사회사상가인 토머스 페인은 1796년 <토지분배의 정의>에서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살아갈 땅이 기본권으로 주어져 있다."고 말했다. 땅이 공공재이므로 거기에서 나오는 수입은 모두에게 일정한 금액만큼 지급하는 게 당연하며, 이는 자연유산에 대한 사람들의 정당한 권리라고 설명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인 샤를 푸리에는 1836년 〈잘못된 산업〉에서 “기본적 자연권을 누리지 못하는 탓에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는 기본 생존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적 자유주의 사상가인 존 스튜어트 밀은 1849년 〈정치경제학의 원리〉 2판에서 “분배에 있어서, 특정한 최소치는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공동체 모든 구성원의 생존을 위해 먼저 할당된다”라고 썼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려면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돼야 한다고 본 것이다. 철학자인 버트런드 러셀은 1918년 〈자유로 향하는 길〉에서 생계에 충분한 소득을 모두에게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적인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1962년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음의 소득세’를 주장했는데, 음의 소득세란 특정 수준 이하의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세금체계를 의미한다. 경제학자인 제임스 토빈도 최소 보장 소득인 데모그랜트(demogrant)를 얘기하면서, 1972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인 조지 맥거번의 대선 강령에 포함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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