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와 구조조정 발표로 인텔 주가가 이틀 연속 큰 폭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경기침체론이 대두되고 있지만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일(美 현지시간) 미국 증시가 급냉 모습을 보이면서 우려되던 미국 경기침체론이 고개를 들고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 7월 미국의 금리동결과 관련해 FOMC(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안이한 태도를 지적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과연 경기침체로 봐야 하느냐를 두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미국 뉴욕 증시는 지난 2일 다우지수는 3만9737.26으로 전일 대비 1.51% 떨어져, 4만 밑으로 밀렸고, 나스닥도 2.43% 떨어진 1만6776.16을 기록했다. S&P500지수도 1.84% 하락한 5347.56에 마감했다.
증시가 파랗게 질린 이유로 미국 노동시장과 제조업 업황 둔화를 보여주는 경제지표가 등장하면서다. 이날 발표한 미국의 7월 실업률은 4.3%로 약 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7월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도 11만 4000명 늘어나는데 그치며, 제조업 업황이 꺾이고 있음을 보여줬다.
특히 미국 공급관리협회(ISM)가 조사해 발표하는 7월 제조업 구매관리리자지수(PMI)가 46.8로 발표되면서 제조업 업황에 비상등이 켜졌음을 보여줬다.
주가지수는 급락하는 가운데 채권 금리도 폭락했다. 4.1%대였던 미 10년물 채권 금리는 한 주 만에 3.7%대로 40bp(1bp=0.01%포인트)나 내려갔고, 2년물 채권 금리는 무려 50bp 추락했다.
뉴욕 주식시장을 이끌던 기술주들도 줄줄이 하락했다. 엔비디아가 1.78% 하락했는데, 전날 6.67% 하락에 이어 큰 폭 하락해, AI 거품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브로드컴이 -2.18%, 퀄컴 -2.86%, 아마존 -8.79%, 알파벳 -2.40%, 메타 -1.93%, AMD -0.03% 등 대표적인 기술주들이 줄줄이 하락했다. 특히 부진한 실적과 구조조정을 발표한 인텔의 주가하락이 컸다. 인텔은 하룻동안 26.06% 하락했는데, 이는 전닐 5.50% 하락한 데 이어 연속 하락해 제조업 중심의 산업 둔화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여줬다.
뉴욕 증시 한파는 유럽으로도 덮쳤다. 범 유럽주가지수인 스톡스600지수는 497.85로 전일 대비 2.73% 하락했는데, 이 지수가 500 아래로 내려간 것은 지난 4월 이후 3개월 만이다. 영국과 프랑스 증시가 1% 넘게, 독일이 2%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자 시장에서는 FOMC가 시장에 대한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 지난 7월 말 FOMC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인하를 시작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7월 31일(현지시간) FOMC는 미국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으로 동결하면서, 9월 인하 가능성 비중을 높여놨다. 9월이라는 시점을 처음 거론하면서도, “아직도 인플레이션률이나 관련 경제지표를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는 기존의 신중한 입장을 고수했다.
FOMC가 금리를 동결한 배경은 최근 발표된 경제지표들이 아직 인플레이션 리스크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금리인하 관련 판단의 핵심 지표 중 하나인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는 지난 6월 작년 같은 기간보다 2.5% 상승했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PCE는 전년 동월 대비 2.6%, 전월 대비 0.2% 상승했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눈에 띄게 안정되는 모습이 아니었다.
다만 6월 실업률은 4.1%로 올해 초(3.7%)보다 소폭 상승한 부분이 부담이 됐는데, 이 수치가 이번에 4.3%로 더 확대되면서 경기침체 우려를 낳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금융시장에서는 연준이 9월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는 분위기다. 인하 폭도 0.5P 정도로 빅컷을 예상하고 있다. JP모건과 씨티그룹은 연준이 오는 9월과 11월에 잇따라 50bp씩의 인하를 시행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연준이 예상대로 금리를 빅컷 인하할 수 있는 배경에는 확실한 경기 침체 징후가 나타나야 하는데 과연 현재 미국의 상황이 경기침체로 봐야 하는 지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있다.
우선 침체의 근거로는 고용 측면의 불안요소를 판단하는 ‘삼의 법칙’이 발동됐다는 의견이다. 삼의법칙은 3개월 평균 실업률이 최근 12개월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아지면 경기침체가 발생한다는 내용이다. 1950년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11번의 경기침체 중 1959년을 제외하면 모두 삼의 법칙이 들어맞았다. 삼의 법칙을 만든 클라우디아 삼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블룸버그 인터뷰를 통해 "삼의 법칙이 발동된 게 맞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지금 당장 미국이 경기침체를 맞닥뜨린 건 아니다"라며 "그러나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보유하고 있던 애플 주식 지분 절반 가까이를 지난 2분기에 매각한 것을 두고, 버핏이 향후 미국이나 세계 경기를 어둡게 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반대로 미국 경기는 아직 견조하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미국 상무부가 지난 7월 25일(현지시간) 자국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연율 환산(해당 분기 경제성장률이 1년 동안 이어졌을 때를 가정해 환산한 것)으로 2.8%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1분기 성장률(1.4%)보다 높으며, 다우존스가 취합한 전문가 예상치 평균(2.1%)보다 0.7%포인트 더 높은 수치다.
통상적으로 경기 침체의 판단 기준은 분기 성장률이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가 나왔을 때 침체로 판단한다. 현재 미국의 경제성장률 실적이나 전망치를 놓고보면 아직 견조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는 48개국 주요 경제국에 대해 경제전문가 20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3.1%라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 4월 조사 때 올해 2.9%, 내년 3.0%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치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며,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의 예측치와 비슷하다.
미국 경기를 판단하고 금리인하를 단행해야 하는 지의 기본 지표들인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 고용 간의 엇박자가 나오면서 미 연준의 고민이 깊어졌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인플레이션 관련 지표에 따라 금리인하 시점과 폭을 정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현재 전 세계 시장에서 가장 위협적인 요소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풀린 과다한 유동성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을 경우 경기는 더욱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국내 경제관련 전문 교수는 “미국 금리가 확실히 2.0%를 찍었다는 시그널이 나오기 전에는 쉽게 금리인하를 결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성장률이 높게 나오고 있어서 금리인하를 단행할 경우 인플레이션 공포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고용지표의 중요성을 앞서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