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롯데 비상경영 선언. 사진=수도시민경제
롯데건설로부터 시작된 롯데그룹의 부실이 그룹 전체로 번져가면서 지난 1일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롯데지주가 비상경영을 선언하면서 그룹의 미래에 어둠이 깔린 것과는 별도로, 그룹의 경영권을 가지고 다툼을 벌이고 있는 신동빈 회장 형제간의 싸움이 더욱 본격화 될 것이란 견해가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의 비상경영은 이미 그룹의 중심 계열사부터 시작됐다. 지난 6월부터 롯데면세점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데 이어 7월에는 롯데케미칼이 비상경영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8월부터 롯데지주가 비상경영을 선언하면서 롯데그룹 전체가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이미 지난달 그룹의 주요 두개 계열사가 비상경영에 들어간 상황에서 신동빈 회장은 사장단 회의에서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극복하면서 지속성장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잊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주문하면서 본격적인 비상경영 체제 돌입을 선언한 것이다.
앞으로 그룹 임직원들에 대한 경비절감과 주말근무 등 비상근무체제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그룹의 구조조정에는 쉽게 나설 수 없을 것이라고 롯데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말한다. 바로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정점에 일본롯데홀딩스가 있고, 그 위에 광윤사가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의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이 광윤사 지분의 50% 이상을 가지고 있는데, 그동안 광윤사의 대주주이면서 롯데 경영권을 신동빈 동생에게 빼앗겼던 배경으로 다수의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비상경영을 선언하는 등 경영이 악화된 상황에서 그룹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빠진 일본의 롯데홀딩스와 광윤사는 새로운 대안으로 대주주인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실 신동주 전 부회장의 경영권 도전은 이미 10년 전부터 매년 주주총회 때마다 시도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26일 열린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도 신동주 전 부회장은 본인이 경영권을 잡고 동생 신동빈 회장을 해임시키는 안건을 내놨지만 부결된 바 있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2015년 7월부터 매년 롯데홀딩스 주총에 신동빈 회장의 해임과 자신의 이사진 복귀를 시도해왔다. 올해에도 그가 제시한 안건이 모두 부결되면서 그의 10번째 경영 복귀 꿈이 또 다시 무산된 것이다.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일본 광윤사의 지분 반 이상을 신 전 부회장이 가지고 있지만, 주요 주주인 종업원지주회(27.8%)와 임원지주회(5.96%) 등이 신 회장을 지지하는 바람에 신 회장이 롯데홀딩스 영향력을 기반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형태다.
오히려 지난 6월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는 신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 전무가 사내이사에 등재됐다. 신 전 부회장이 이것을 반대했지만, 신 회장의 의사대로 이사 선임에 성공한 것이다. 이를 두고 롯데의 3세경영이 시작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6월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앞두고 일본 웹사이트 ‘롯데 경영 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에 보도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주요 내용은 한국과 일본 롯데 모두 경영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신 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에서 해임해야 하고 자신을 롯데홀딩스 이사로 선임해 롯데를 근본적으로 재건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또한 신 전 부회장 측이 롯데홀딩스에 제출한 '회사 제안에 관한 이사 선임 의안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 관한 공지'에는 보다 적나라한 말이 담겨있다. 신 전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은 컴플라이언스 및 기업 지배구조의 관점뿐만 아니라 경영 능력의 관점에서도 롯데홀딩스의 경영자로서 확실히 부적격하다"면서 "신유열 전무 또한 신 회장의 아들이라는 점 외에 경영자로서의 실적이나 공헌 등 롯데홀딩스 이사 후보자로 꼽힌 이유를 찾을 수 없다"고 적었다.
이번 롯데지주의 비상경영 선언으로 앞으로 형제간의 싸움이 본격화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신 회장이 과감하게 조직을 건드리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현재 신 회장이 형인 신 부회장을 물리치고 경영권을 차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광윤사의 지분이 낮지만 종업원지주를 비롯한 계열사들의 지지를 받고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는 신 부회장보다 계열사들이나 종업원들이 신 회장을 선택하면서 갖게 된 경영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롯데의 경영상태가 더욱 악화되고 상황이 나빠질 경우 여러 계열사 특히 일본홀딩스와 광윤사가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럴 경우 롯데 지배구조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신 전 부회장의 등극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롯데에 정통한 한 인사는 “신격호 선대 회장이 치매 상태가 길게 가면서 후계구도가 명확하지 않았고, 그 와중에 일부 신 선대 회장의 가신들이 신동빈 회장을 선택하면서 현재 지배구조가 형성된 면이 있어서, 향후 그룹 경영 상황 변화에 따라 지배구조 변화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지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