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홍수로 인해 훼손된 미국 캘리포니아에있는 오로빌댐의 여수로(Spill Way)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으나 우리 세대가 학교에 다닐 때에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했고 뉴딜 정책 중에는 TVA(테네시 계곡 공사) 댐이 성공적이었다고 배웠다. 또한 박정희 정권은 고속도로와 댐 건설을 한국형 뉴딜로 홍보하곤 했다. 그런데, TVA를 지독하게 싫어한 대통령이 있었다. 바로 로널드 레이건이다.
영화배우로서 인기가 다한 레이건은 영화배우 조합 대표를 지냈고 그 때 낸시를 만나서 결혼했다. 그즈음 GE는 레이건에게 CBS의 ‘GE 극장“(GE Theater) 진행을 맡아 달라고 했다. GE가 스폰서해서 여러 인물과 만나고 장소를 방문해서 대담을 하는 이 프로는 라디오에서 시작해서 TV 프로로 인기가 높았다. 당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던 GE의 사업장도 많이 방문해서 GE를 홍보하는 효과도 컸다. 이 프로는 1962년 6월에 끝나고 말았고, 레이건은 8년 동안 해 왔던 직업을 잃어버렸다.
어떻게 해서 GE가 이 프로를 중단했는지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있는데, 레이건은 자신의 회고록 <An American Life>에서 GE가 GE 제품을 홍보하는 식으로 포맷을 바꾸어서 그만두었다고 썼다. 그런데 그 배경에 TVA가 있었다. 당시 TVA는 그 지역에서 나오는 석탄을 바지선으로 운송하기 위해 댐으로 생긴 호수와 호수를 잇는 운하를 계획하고 있었다. 레이건은 그것을 보고 이미 철도가 있어서 화물열차로 운송을 하는데 운하가 왜 필요한가 하는 논조로 방송을 했다. 그러면서 그가 늘 해오던 식으로 정부가 비대해지면 쓸데없는 일을 한다는 논평을 덧붙였다. 그런데, TVA는 GE의 큰 고객이었다. GE는 TVA에 발전기(터빈) 등 많은 설비를 공급하고 있었다. TVA 간부들이 GE에 항의를 했고, 때마침 GE 사장이 바뀌어서 레이건을 해고하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했고 그래서 레이건이 방송을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방송을 그만 두었지만 레이건은 이미 너무 유명해져 있었다. 레이건은 방송에서 큰 정부(Big Government)와 높은 세금(High Tax)을 비난해서 기업인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레이건은 1964년 공화당 전당대회 당시 배리 골드워터를 지지하는 유명한 연설을 하며, 196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돼서 나중에 대통령이 된다. 그래서인지 레이건은 댐을 싫어했다. TVA 댐들을 두고서 레이건은 ”그들은 홍수에 이따금 땅이 잠기는 것을 막기 위해 댐을 세운다고 하지만 댐을 세워서 그 보다 열 배나 더 많은 땅을 영구히 물 아래 잠기게 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물론 지나친 단순화이지만, 고만고만한 댐을 여기저기에 세운 TVA는 발전 외에는 다른 용도가 별로 없으며 공기업인 TVA는 창업 이래 지금까지 계속 적자라서 레이건은 TVA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았던 것이다. 대통령이 된 후 레이건은 TVA를 민영화하려 했으나 어느 기업도 적자 공기업인 TVA를 인수하려 하지 않아서 실패했다.
1966년에 레이건이 현직 주지사 팻 브라운을 꺾고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이 된 것은 그 해 큰 정치적 사건이었다. 1962년 주지사 선거 때 리차드 닉슨이 도전해서 패배한 팻 브라운을 4년 후에 레이건이 이겼기 때문이다. 팻 브라운이 지사 시절에 중부 캘리포니아에 오로빌 댐(Oroville Dam) 건설을 시작했다. 오로빌 댐은 중부 캘리포니아의 홍수를 막고 물을 공급하고 발전을 하는 거대한 다목적 댐이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건설한 오로빌 댐은 1968년 5월에 준공을 앞두고 있었다. 댐을 싫어하고 또 전임 팻 브라운 지사를 싫어한 레이건 주지사가 준공식에 참석할 것인가가 관심으로 떠 올랐다. 레이건은 준공식에 참석해서 이 댐이 지역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식으로 축사를 했다.
오로빌 댐이 세워짐에 따라 미국에서 가장 높은 댐이던 후버 댐은 그 지위를 오로빌 댐에 넘겨주어야 했다. 후버 댐은 V자 계곡에 우뚝 서 있어서 엄청나게 높아 보이지만 오로빌 댐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가 않는다. 1990년 대 말에 댐 관리와 댐 수리권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나는 오로빌 댐을 가본 적이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그리 높아 보이지가 않았다. 그래서 안내소 직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누구나 그렇게 이야기한다면서, 오로빌 댐은 폭이 워낙 넓어서 높아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웃으면서 답했다.
오로빌 댐은 2017년 2월 붕괴할 뻔했다. 2016~17년 겨울 중부 캘리포니아에는 유독 비가 많이 내려서 댐이 만수위에 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댐 운영자는 여수로(Spill Way)를 열었으나 물살이 너무 거센 탓인지 여수로 콘크리트가 훼손돼서 여수로 자체가 붕괴할 위기에 처했다. 여수로 방류를 중단하자 수위가 갈수록 올라가서 결국 비상방류 여수로로 거센 물이 월류(越流)하기 시작했다. 오로빌 댐은 내부가 흙과 자갈인 사력댐(沙礫댐)이기 때문에 댐 본체가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지방 정부는 하류 지역 주민들에게 소개령(疏開令)을 내렸다. 도피하는 주민들의 자동차 행렬로 교통이 마비되는 등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다행히 댐 본체 훼손이 멈추었고 비가 그쳐서 댐 수위가 내려가기 시작해서 위기 상황은 종식됐다. 그야말로 운(運)이 좋았다.
이 사건 후 오로빌 댐은 수위를 낮추어 운영했고 파괴된 여수로를 보완하는 공사를 했다. 댐 수위를 낮추어 운영하다 보니 2020~2022년 가뭄 시에 댐 수위가 너무 낮아져서 발전을 제대로 못하는 곤란을 겪었다. 댐을 건설하고 운영하는 문제는 절대로 간단하지 않음을 잘 보여준 경우라고 하겠다. 댐 건설과 운영, 쉽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