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식민주의2 :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세계무역기구(WTO)

수도시민경제 승인 2024.09.06 08:42 의견 0


1997년 11월 어느날 한국의 경제부총리가 이름만큼이나 깡마르고 깐깐하게 생긴 미셸 깡드쉬 총재가 옆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외환위기로 시장 금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고, 부동산을 비롯한 시중의 자산가격은 폭락했다. 또한 공공기관 민영화와 금융기관의 통폐합, 근로자들은 구조조정의 칼바람으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었다.

착한 국민들은 너도 나도 금붙이를 들고 나와 금모으기 운동을 하는 등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한마음 한 뜻으로 나섰던 기억이 있다. 당시 다니던 직장내에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을 예정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TV에는 실직한 직장인들이 눈물로 국난극복을 호소하는 영상들이 대거 송출되었다.

그 때는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기구가 우리나라의 부도를 막아주기 위해 큰 역할을 해주는 고마운 기구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의 재원이 뉴욕 월가와 런던의 증권사, 은행 등 금융자본가들로 부터 나온다는 사실과 신자유주의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럴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국제통화기금(1945년 12월 설립)과 세계은행(1946년 8월 설립)의 연혁은 인터넷을 뒤지면 상세하게 나오지만 국제통화기금의 본래 목적은 국제수지 불균형 문제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게 국제통화기금 자체가 가진 자금을 대출해 주기 위해 세워졌고, 세계은행(1946년 8월 설)은 빈곤 퇴치 및 개발도상국의 경제 발전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두 기관은 개도국에 자금을 지원하여 정부지출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대공황으로 가는 걸 막아주고 경제발전을 추진하고자 하는 케인즈주의에 입각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G7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을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이용했다. 개도국에게 정부지출을 멈추고 빚독촉을 하고 부채부터 상환하라고 압박하였다. 이와같이 국제통화기금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된 시기는 1978년부터 1987년까지 총재를 한 자크 드 라로지에르가 국제통화기금의 고위층을 케인즈주의자들에서 신자유주의자들로 대거 교체하면서 시작되었다

IMF와 WB 모두 기업처럼 투표권이 회원국의 재정적 기여도에 따라 분배된다. 주요 의사 결정에는 85%의 투표가 필요한데 두 기관 모두 미국이 16%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어 사실상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다. 그 다음 지분이 큰 나라는 프, 독, 일, 영 모두 G7국가들이다. 중위, 저소득 국가들은 세계 인구의 85%를 차지하지만 의결권이 40%밖에 되지 않는다. 글로벌 남부 국가 모두 연합해서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의 정책에 반대해도 그 정책을 막을 수가 없다. 여기에 더해 기관들의 수장은 임명직인데 암묵적으로 세계은행은 미국, 국제통화기금은 유럽인이 돌아가면서 맡고 있다(p223)

국제통화기금은 채무국으로 하여금 구조조정을 강요하면서 모든 현금흐름과 자산을 부채상환으로 돌리게 했다. 즉 의료, 교육, 농업, 식품 등에 들어가는 보조금과 유치산업 보조금 등을 줄여야 하고 통신이나 철도와 같은 공기업을 매각해 공공 자산을 민영화하라고 한다. 한마디로 개도국의 발전을 위해 진행하던 개혁을 되돌려야만 한다. 이렇게 지출을 줄이고 민영화로 들어온 돈은 월가의 돈을 갚는데 사용되었다(p209)

보조금이 줄면서 보조금을 받지 못해 농민들은 감당 가능한 가격대로 종자나 장비같은 투입물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가구소득 중 점점 더 많은 비중을 식료품에 써야 했고 유치산업은 더 이상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는데 필요한 보조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민영화로 인해 핵심 공공서비스들이 수익을 좇아 운영되었고 금융자유화는 투자자들이 언제라도 돈을 빼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였고 이는 금융을 위험할 정도로 불안정하고 예측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p220)

1980년대부터 세계은행도 구조조정을 대출의 조건으로 걸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채무국에게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달도록 강제함으로써 세계은행은 채무국이 확보할 수 있는 모든 원천에서 최대한 돈을 끌어모아 부채상환에 최우선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할 수 있게 되었다(p212~213)

채무국의 공공자산을 민영화하도록 강요하면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외국기업들에게 전화, 철도, 은행, 병원, 학교 등 상상 가능한 모든 공공 유틸리티를 대폭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민영화는 투자자들에게 굉장한 기회를 창출해주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자주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공공 유틸리티가 공적으로 소유되어 있을 때는 대개 전체 인구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책무로 삼는다. 그런데 민간이 소유한 공공 유틸리티는 이윤을 올리는 것을 책무로 삼으므로 돈을 낼 여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서비스를 제공할 이유가 없게 된다(p231)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높은 이자율로 부채를 상환하고 기존부채를 감당하기 위해 신규 부채를 얻으라고 강요받으면서, 많은 나라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부채 상환에 지출하게 되었다. 사회서비스 지출이 줄면서 병의원이 문을 닫았고, 경제발전에 필요한 숙련인력을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교육 투자가 감소했다(p220)

또한 무역 장벽을 없애고, 시장을 외국 경쟁자들에게 개방하고 자본 통제를 철폐하고 가격 통제를 없애고 노동 규제와 환경 규제를 없애서 경제가 '외국인 직접투자에 매력적'이고 더 효율적이 되게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자유시장적 개혁이 해당국가의 경제성장률을 높여서 빠르게 부채를 상환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논리였다(p209)

이에 더해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채무국이 인플레를 낮게 유지하도록 강요했다. 일종의 화폐긴축을 강요한 것인데 이는 채무국이 인플레를 통해 부채의 가치를 절하할 수 있다는 미국 월가의 우려 때문이었다. 이는 채무국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부채를 인플레로 줄이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통화 팽창 정책으로 고용과 성장을 촉진하지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p210)

종합적으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긴축, 민영화, 자유화라는 세가지 요소가 혼합된 처방을 제시했다. 이원칙은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를 필두로(그들이 구조조정의 첫 희생자들이었다) 국제통화기금의 통제하에 놓인 모든 국가에 일괄 적용되었다. 현지의 경제 조건이 어떻든, 현지 사람들의 구체적인 니즈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렇게 일괄 적용된 청사진은 워싱턴에 있는 관료들이 내려보낸 것이었다(p210).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효과가 없는 것이 분명할 뿐더러 심지어 실제로는 해를 끼치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었을 까? 핵심적인 이유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특별한 '면책적 지위'를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1945년에 만들어진 국제조직면책법International Organizations Immunity Act에 의해 두기관은 면책 지위를 받고 있다(p222)

이 법으로 보호받으며, 그러한 보호 아래에서 글로벌 남부국가들의 경제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이들이 부과하는 정책이 그 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혀도 아무도 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없으므로 이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거시경제 정책을 주무를 때 조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모든 리스크는 채무국이 떠맡게 되는 것이다(p222)

구조조정은 글로벌 남부 정부들이 발전과 빈곤 감소를 위해 필요로 하는 정책에 역행했다. 그리고 서구 자신이 과거에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보호주의 및 개발주의 정책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p220).

서구의 정책 결정자들은 개도국들이 성장하려면 경제를 자유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서구 국가들 자신은 경제력을 강화하던 동안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부유한 나라들은 모두 자신들의 경제를 보호주의적 조치로 성장시켰다. 매우 최근까지도 미국과 영국은 가장 공격적으로 보호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였고 정부 보조금, 무역 장벽, 제한적인 특허로 경제력을 키웠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자들이 맹비난하는 모든 것을 한 것이다. 구조조정은 서구가 발전의 경로를 올라오는 데 사용했던 '사다리를 걷어차서' 다른 나라들은 따라 올라올 수 없게 만들었다(p221)

가난한 나라들은 능력이 없어서 발전 사다리를 올라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 봉쇄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몇 글로벌 남부 국가들에는 자유시장 원칙이 일괄적으로 적용되지 않았고, 그들은 합리적으로 발전을 구가했다. 터키,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호랑이 국가들이 그러한 사례다(p221)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가 생겨났다. 또한 GATT가 허용했던 유연성 대신 '일괄 타결single undertaking'이라고 불리는 모 아니면 도 식 협상 방식이 들어섰다. 국가 들은 세계무역기구의 규칙 전체에 동의하거나 아니면 세계 경제 밖으로 나가야 했다(p250)

세계무역기구에 참여하면 세계 시장에 대한 접근은 촉진되겠지만 그 대가로 관세를 낮추고 자국산업에 대한 보조를 중단해야 하고 해외로부터의 자본흐름에 대해 규제를 없애고, 외국기업이 현지기업과 차별없이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야 했다. 즉 자국산업의 보호를 위한 정책들과 반대의 정책을 시행해야만 한다. 구조조정이 자유시장 정책을 한 국가씩 개별적으로 강제했다면, 세계무역기구는 신자유주의적 시스템을 글로벌 남부 전체에 걸쳐 일거에 확대하고 표준화했다. 대부분의 국가는 따르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p250)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구와 세계은행의 간섭이 많은 개도국일수록 긴축으로 인한 최고소득계층과 저소득층간의 불평등은 갈수록 심화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긴축정책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긴축이 만든 불평등의 역사(2024.6.29)'라는 글을 통해 이야기한 바 있다.

총과 칼로 식민지를 개척하고 수탈하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근사한 양복에 멋진 서류가방을 든 국제기구의 사람들이 구제금융과 원조를 빌미로 구조조정과 금융자유화를 강요하면서 경제적 이익을 수탈하는 새로운 식민주의가 여전히 진행형이다.

다시한번 이야기 하지만 신식민주의는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한 국가내에서도 부자들을 위한 법인세, 종부세, 상속세 감세와 대기업을 위한 세액 공제, 고용유연화, 복지축소, 직접적인 서민체감 정책인 재정지출 축소, 고금리 정책 등 재정과 금융부문의 전방위적인 긴축정책을 통해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불평등을 갈수록 심화시킨다면 이 또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을 수탈하는 또 다른 형태의 신식민주의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 이 글은 '격차'(The divide, Jason Hickel, 2017, 국내에는 2024년 출간)에서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이종선, 경기주택도시공사 기회경제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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