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등 무시한 정부의 대출정책, 결국 '빚투' 조장

-2단계 스트레스 DSR 연기한 7월, 나흘만에 5대은행 대출 2.2조 증가
-부동산과 증권시장에 ‘영끌’ ‘빚투’ 현상 다시 등장

이주연 기자 승인 2024.07.07 15:20 | 최종 수정 2024.07.07 15:28 의견 0
강남의 고급아파트 단지들 뒤로 아침해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수도시민경제

정부가 당초 7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두달 연기해 9월부터 시행하기로 발표한 이후 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어, 정부가 나서서 가계부채 증가를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고있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4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총 710조7천558억원으로 집계됐다. 6월 말(708조5천723억원)과 비교해 4영업일 만에 2조1천835억원이나 늘었다.

하반기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더해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던 스트레스 DSR이 9월로 2달 연기되면서 대출을 통한 주식이나 부동산 등을 상대로 하는 투자심리가 살아난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부동산·주식을 사들이는 레버리지(차입) 투자 열풍이 약 3년 만에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5대 은행 가계대출은 6월 한 달 새 5조3천415억원 급증하면서 2021년 7월(+6조2천억원) 이후 2년 11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으며 아직 월초지만 증가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는 분위기다.

가계대출 종류별로는 최근 주택 거래 회복과 함께 수요가 커진 주택담보대출이 552조1천526억원에서 552조9천913억원으로 8천387억원 불었다.

금융권은 이러한 구체적 가계대출 증가 배경으로 부동산 경기 회복, 공모주를 비롯한 국내외 주식 투자 자금 수요,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실행(9월), 정책자금 대출 증가, 금리 인하 등을 꼽고 있다.

대출 완화 바람으로 벌써부터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이면서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수요가 몰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1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보다 0.20% 올라 2021년 9월 셋째 주(0.20%) 이후 약 2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미국의 금리인하 시점을 9월이냐 아니냐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 공방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9월 인하설이 힘을 얻고있는 상황에서 급증하고 있는 가계대출이 향후 국내 경제에 악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안그래도 청년대출이나 신생아대출 등은 DSR 규제를 받지 않고 있고, 최근에야 DSR 규제를 하기로 한 전세대출 등이 고삐가 풀려있는 상황에서 7월 시행예정인 2단계 스트레스 DSR을 9월로 연기한 것은 성급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집값이 상승으로 돌아선 현재의 부동산 시장 환경에 기준금리 인하가 예정돼있는 상황에다 강화된 2·3단계 스트레스 DSR 적용 시점까지 늦춰지니 실수요자들의 대출수요가 몰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25일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일을 7월1일에서 9월1일로 연기하는 내용의 하반기 스트레스 DSR 운용방향을 발표하고, 내년 1월부터 시행예정인 3단계도 하반기로 조정하기로 하면서 대출심리가 강해졌다는 것이다.

당초 이번달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던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적용할 경우 차주별 DSR 최대 대출한도가 은행권 및 제2금융권에서 변동·혼합·주기형 등 대출 유형에 따라 3~9%, 신용대출은 1~2%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었다.

정부가 2단계 스트레스 DSR을 연기한 배경에는 어려움을 겪고있는 자영업자들을 배려하는 범정부 정책,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연착륙 상황 등을 고려한 것이지만, 자칫 시장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간과한 것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장 흐름이 정부가 ‘집값 부양책’을 계속 유지할 것이란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미 서울 중심으로 아파트값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자칫 집값 비상이 일어날 수 있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의 7월 첫째 주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0.20% 오르며 16주 연속 오름세를 보였다. 이미 전국 아파트 시세도 3주 전부터 플러스로 돌아서 집값 상승세가 서울에 이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는 지난주 기준 60주 연속 상승세다. 전세가의 지속적인 상승세로 인해 매매가와의 차이인 전세가율이 올라가면서, 갭투자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 전문가들은 가계대출 급증 추세는 주식시장과 주택시장 모두에 빚투를 부추겨 경제 전반의 리스크를 경고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 경제에서 가장 큰 리스크는 OECD국 중 가계부채가 국민소득 대비 가장 높은 비율인 만큼, 부채관리가 경제정책의 제 1과제라고 본다”면서 “현재 국민소득과 맞먹는 수준의 가계부채와 더불어 기업부채 그리고 정부부채까지 합하면, 총 5000조원이 넘는 부채가 되는데 빚을 내서 투기하라는 식의 분위기 조장은 정말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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