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초 퇴임하는 칠레의 미첼 바첼렛 대통령(사진 왼쪽)과 세바스티안 피네라 대통령 당선자가 만나서 환하게 웃으며 담소하는 장면이다. 칠레는 대통령을 4년 단임으로 하되 중임을 허용한다.
개헌 문제에 대해서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전직 국회의장 등 이른바 원로 그룹이 프랑스 같은 이원집정부 정부를 도입하고자 하는데, 이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프랑스 헌법은 1958년 드골이 컴백하면서 드골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진 헌법으로, 프랑스 3, 4공화국의 의회정부 구조에 7년 임기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제를 이식한 독특한 헌법이다. 2원적 집정부에선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같은 정당이면 대통령이 너무 막강한 권력을 갖고,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가 정당이 다르면 정부가 마비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미테랑 대통령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에 대통령과 국회의 다수당이 다른 동거(同居)정부가 있었으나 노회한 두 대통령은 정국을 무난하게 운영했다. 말하자면, 제도적 한계를 정치력으로 극복한 셈이다. (미테랑은 7년 임기에 재선을 해서 14년 동안 대통령을 했다. 시라크는 첫 임기는 7년을 했으나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안이 통과됨에 따라 두번째 임기는 5년을 해서 12년 동안 대통령을 지냈다.)
프랑스 외에 이런 특이한 헌법을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이런 방향으로 개헌을 해서 대통령은 외치(外治)를 하고 국무총리는 내치(內治)를 담당하게 하자고 하는데, 세계가 긴밀하게 엮여 있는 오늘날 외치와 내치를 구분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특히 외치, 내치 하는 용어부터가 정부가 국민을 통치한다고 본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의원 내각제이면서 직선 대통령에게 특정한 권한을 부여하는 정부 형태를 분권형 정부라고 하는데, 오스트리아와 핀란드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두 나라는 기본적으로 의원내각제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다만 핀란드는 대통령이 국군 통수권을 갖고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그것은 핀란드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4.19 후 2공화국 헌법에서 국군 통수권을 대통령에게 부여했는데, 군령권(軍令權)은 대통령이 갖고 군정권(軍政權)은 내각이 갖고 있는 시스템은 비상시에 큰 위기를 야기할 수 있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영국 일본 그리고 서유럽처럼 의원내각제를 하거나 미국과 중남미처럼 대통령제를 하는 수밖에 없다. 1987년 개헌 때부터 정치학자와 공법학자를 상대로 의견을 물으면 대체로 6대 4 정도로 의원내각제가 우세했으나 일반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하면 대통령제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미국처럼 4년 임기에 한차례 중임할 수 있도록 하고 부통령을 두거나, 멕시코처럼 6년 임기 단임제를 하거나 칠레처럼 4년 임기로 하되 연임(連任)을 금지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임기 2년 하원의원 전체와 임기 6년 상원의원의 1/3, 그리고 주지사 등 주와 지방선거를 한날에 같이 한다. 멕시코는 대통령 임기는 6년이고 상원의원 임기는 6년, 하원의원 임기는 3년이라서 대통령 선거를 할 때 상하원 의원 선거와 주지사와 시장 등 지방선거를 같이 한다. 칠레는 대통령 임기와 하원의원 임기는 4년이고 상원의원 임기는 8년이고, 대통령 선거를 할 때 하원의원 전체와 상원의원 절반을 선출한다.
미국, 멕시코, 그리고 칠레는 대통령 선거와 총선, 그리고 지방선거를 같은 날에 한다. 우리나라처럼 대선 따로, 총선 따로, 지방선거 따로 하고, 대통령 유고시에 승계자가 잔여임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임기를 하도록 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대선을 먼저하고 총선을 한 달 후에 하도록 했던 것은 5.16 후 총선을 관권선거로 하기 위함이었음은 앞서 설명한 바 있다.
대통령이 연임을 할 수 있게 하면 대통령은 재선을 의식하고 국정을 운영하며,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야당이 승리하기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20세기 들어서 연임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 중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정도가 연임 후에도 국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대통령에게 유고(有故)가 발생할 경우에 부통령이 있으면 잔여임기를 채우도록 할 수 있으나 단임 대통령에 부통령을 두면 부통령이 마치 차기 대통령처럼 인식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단임 대통령제에서 부통령을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단임 대통령에게 유고가 발생하면 의회가 후임자를 선출해서 잔여임기를 채우도록 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은 두 번 당선될 수 있기 때문에 케네디가 암살된 후 대통령이 된 린든 존슨은 1964년 대선에 승리하고 난 후 1968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었으나 북베트남의 구정 대공세(Tet Offensive)로 1968년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2016년과 2024년에 당선된 트럼프는 개헌을 하지 않는 한 2028년에는 출마를 할 수 없다. 하지만 2028년에 밴스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로 나가고 트럼프가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가능하다. 만일에 밴스-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하고 밴스가 대통령 취임 후에 사퇴하면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승계하며, 트럼프는 밴스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서 의회의 동의를 얻어 부통령으로 임명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트럼프는 3선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그런 황당한 일이 발생할 확률은 마이너스 100%다.
대통령의 연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대통령이 한 번 더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대통령이란 게 ‘5년 지옥’이었는데 그것을 ‘8년 지옥’으로 연장하자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어떤 대통령이 너무 훌륭해서 단임만 하고 떠나는 것이 아쉽다면 한 임기 쉬고 그 다음에 다시 뽑으면 된다.
2005년 칠레 대선에서 승리한 미첼 바첼렛(Michelle Bachelet 1951~)은 임기 동안 인기가 좋았으나 연임할 수 없어서 2009년 대선에선 2005년 대선 당시 자신의 상대방이었던 세바스티안 피네라(Sebastián Piñera 1949~2024)가 당선됐다. 2013년 대선에선 바첼렛이 다시 당선돼서 2014~18년간 바첼렛은 두 번째로 대통령을 지냈다. 2017년 대선에서 세바스티안 피네라가 다시 당선돼서 2018~2022년간 두 번째 임기를 채웠다.
피노쳇 독재시절에 박해를 당한 바첼렛은 중도 좌파이고 기업인 출신인 피네라는 중도 우파였다. 개헌은 쉽지 않지만 대통령제를 유지한다면 칠레처럼 대통령은 4년 단임으로 하되 중임이 가능하도록 하고 대선과 총선을 같은 날에 치르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