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의정갈등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 더 클까를 따질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이미 병원에서 응급을 비롯한 필수의료 의사 얼굴 보기 어렵게 됐고, 의과대학은 이제 학생들이 학기 등록마저 거부하고 나섰다.
서울대학교가 집단휴학에 대해 인정하면서, 정부가 특별 감사반을 즉시 투입하면서 거의 전쟁국면에 들어섰다. 여기서 한발이라도 물러서면 목숨이라도 뺏길 기세들이다.
오늘 아침에는 대통령실 장상윤 사회수석이 의대 증원 관련해서 정부의 2000명 증원이 오답이라면 1500명이든 1000명이든 새로운 답을 내달라고 난데없는 제안을 했다.
2000명이 오답인지 정답인지 가장 잘 아는 주체가 정부이고, 대통령실인데 이제와서 정답인지 오답인지를 의료계에게 내놓으라니 적반하장이다.
당초 증원 결정과정에서부터 합리적이지 못했고,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았고, 심지어 회의록마저 없는 상태에서 일부 메모까지 없애버린 당사자들이 할 말은 아니라고 본다.
그동안 의정 갈등의 선두에서 국민들의 염장을 질렀던 박민수 차관이나, 요즘 등장하기 시작한 장상윤 수석 모두 행정고시 출신의 행정가들이어서 의료계에 대한 발언들을 보면 딴나라 얘기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의료대란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의료체계 자체를 붕괴시키려는 모습이다. 그 의도의 중심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의 무력화 시도다.
이번에 정부가 입법예고한 고등교육 평가인증 규정(안) 제2조4는 “대규모 재난이 발생한 경우에 학사운영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교육여건이 저하되는 경우, 불인증을 하기 전에 1년 이상 보완기간을 부여하며 보완기간 동안 해당학교가 받은 인증은 유효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한다. 의대 교수들은 이 조항이 의평원을 사실상 무력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의평원은 정관 제8조에서 운영 재원을 기금 과실, 사업 수익, 기타 수익으로 충당한다고 규정하기 때문에 공익법인법 제14조 3항에 의해 주무관청이 사업 시정과 정지를 명할 수 있는 법인이다.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의평원의 기능을 정지시킬 수 있고 인증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현재 의평원의 기능을 마비시키면서까지 의대 증원을 밀어붙이고 있는 대통령실과 정부가 겉으로는 합리적인 정답을 가져오면 대화에 나서겠다는 것은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2025학년도 증원이 강행될 경우 2026년도부터의 의대증원은 정부의 안대로 흘러갈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부가 2025년 의대 증원을 2000명 늘렸을 때 의료계가 가처분 소송을 냈지만 기각 당한 바 있다. 당시 법원도 기각을 했지만,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내년 증원된 신입생이 들어오고 재학생이 복귀할 경우 예과 1학년은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 27조 위반으로 교수와 교육시설 모두 불법행위에 해당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비상식적인데다 불법적인 과정을 겪으면서까지 의대증원을 밀어붙이는 윤 정부의 속내를 참으로 알 수가 없다. OECD국가 중 의사수 가장 낮다는 통계를 보고 의사수를 늘려야겠다는 생각보다, 그런 환경에서 세계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해온 우리나라 의사들이 얼마나 고생이 많은 지를 생각해야 하고, 진찰비 1만원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필수의료 의사들을 어떻게 하면 보호할 까를 생각했어야 한다.
수많은 이권이 왔다갔다 하는 비급여 항목이 많은 의료분야는 개혁하지 않고, 낮은 의료수가에도 과로에 지쳐있는 필수의료진을 방치하면서 의사 수만 늘리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단세포적인 구상이 참으로 구상유치다.
잘 가던 길도 아니다 싶으면 돌아갈 줄 알아야 하는데, 심지어 첫단추부터 잘못 낀 길을 굳이 끝까지 가려는 것은 너무 무모한 것이다. 국가 중요 정책을 놓고 과연 이렇게까지 가고있다는 것이 참으로 불가사의다.
어차피 돌아갈 길은 없다고 판단된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이번 기회에 의료계를 완전히 허물어뜨려서 기초공사부터 다시 해서라도 제대로 된 의료체계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체계부터 시작해서 의료 수가, 필수의료 의사 처우, 비급여 관련 엄격한 관리 등등 종합적인 방안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부담은 지금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고, 정부는 이 부분에 대해 국민과 전쟁을 벌여야 할 것이다.
이기영, 편집국장
저작권자 ⓒ 수도시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