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스탠더드를 무시한, 겉 화장만 화려하고 내실은 부실한 우리 기업 이미지를 구글 제미나이가 생성했다.
한국인에게는 서양의 제도와 문물, 동양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혼재해 있다. 개인의 자유를 기초로 하는 민주주의를 택하면서도, 혈연 지연 학연과 '장유유서'를 기본으로 하는 동양식 위계질서를 마음속에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민주주의 본질이 흔들리고, 사회 전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다. 특히 동양에서는 서양 정신의 핵심인 '자유, 정직, 공정'에 대한 가치를 중시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동양인의 사고 속에는 여전히 '동양의 정신문명이 우세하다'는 생각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상황이다. 위계질서, 명령과 복종, 개인 책임보다 집단 책임, 그에 따른 자립정신의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 듯하다. 서양에서는 '스스로의 독립과 책임, 즉 self-independece와 responsibility가 강조되는데 비해, 동양에서는 '우리끼리, 사회의 책임' 등을 많이 쓴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의 독립과 책임감은 약해질 수밖에 없고, 개인의 경쟁력도 떨어지게 된다.
특히 한국인들은 여전히 '조선 사회의 잔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조선은 소수의 양반(권력자들)이 나머지를 노예로 지배하는 사회였다. 오죽했으면 같은 민족을 노비로 부리면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다.
중체서용론, 화혼양재론, 동도서기론은 19세기 중엽 서세동점(西势东渐)의 정세 속에서 대내적으로 사회모순이 심화되어 체제변혁의 요구를 맞고 있던 한(韓)·중(中)·일(日) 3국이 상황의 타개를 위해 내세웠던 서구문명의 수용 논리. 이 논리를 한국에서는 '동도서기론', 중국에서는 '중체서용론'(中体西用论), 일본에서는 '화혼양재론'(和魂洋才论)으로 표현했다.
유교적 질서(東道)를 지키는 가운데, 서양의 우수한 군사·과학기술(西器)을 수용함으로써 국가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 그 내용이다. 여기에서 도(道)와 기(器)는 성리학의 이(理)와 기(氣)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理)가 우위에 서게 된다. 따라서 중점은 '도'(道)에 두게 되므로 기존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측면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880년 초 정치가이며 학자인 김윤식(金允植)이 주창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동양에서는 서양 사람을 야만족으로 여겼으며 이들을 부를 때도 서양 오랑캐라는 뜻인 양이(洋夷)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동양보다 훨씬 발달된 물질 문명을 갖춘 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이들과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동양보다 앞선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의미는 중국 청나라 말기에, 태평천국 운동 이후에 일어난 양무운동의 기본 사상. 중국의 유교 문화를 바탕으로 하되, 서양의 과학과 기술을 도입하여 부국강병을 꾀하자는 것이다. 다시말해 중체서용은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우리것을 지키자는 의미이다.
서양 열강과 긴장 관계가 고조되던 막부 말기에는 진보적인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화한 대신에 화양(和洋 : 일본과 서양)의 대립을 축으로 하여 일본의 주체성을 모색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부각되었다. 화혼양재(和魂洋才)라는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술과 정신의 영역을 구분함으로써 정신성에서 일본의 주체성과 우월성을 찾아내려 하였고, 그 결과 양이론(攘夷論)이라는 극단적인 주장마저 생겨나기 이르렀다.
중체서용, 화혼양재, 동도서기 같은 말들은 겉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마음과 몸이 따로 분리할 수 없는 존재라는 측면에서, 이런 주장은 말만 그럴듯한 겉치레에 불과하다. 결국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이런 주장은 모두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것이 좋은 것이여'라면서 글로벌 스탠더드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김상민, ‘좌파는 무슨 생각으로 사는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