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상 캐나다와 인접해있는 미국 버몬트, 메인주

트럼프가 취임하고 나서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州)로 만들겠다고 큰 소리를 친 적이 있다. 불과 몇 달 만에 그 호기(豪氣)는 어디로 갔는지 아무런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캐나다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될 가능성 보다는 미국의 7~8개 주가 캐나다로 옮겨 갈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 보인다. 물론 이럴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지만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50년 후에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세계에는 분리 독립을 원하는 정서가 팽배해 있는 지역이 꽤 있다. 스페인 북부의 바스크와 바르셀로나가 있는 까탈루니아가 대표적이고, 중국의 티벳도 그러하다. 이라크와 튀르키에(터키)에 걸쳐 살고 있는 쿠르드족(族)은 쿠르디스탄 국가로 독립하기를 원하고 있다. 2011년 1월에 타임지는 세계에서 독립을 원하는 지역 10곳을 들었는데, 거기에는 미국의 두 개 지역이 있어 주목을 끌었다. 하나는 미국에 있는 버몬트 공화국(Vermont Republic)이고 또 하나는 캐스케이드 공화국(Cascadia Republic)이다. 물론 당장 현실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황당무계한 망상도 아니다.

버몬트 공화국이나 캐스케이드 공화국 같은 황당한 이야기가 타임지에 나오게 된 배경은 조지 W. 부시가 일으킨 이라크 전쟁에 대한 염증이 반영됐다고 할 수 있는데,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이런 정서가 다시 부각됐다. 2020년대 들어서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극심한 대립을 보임에 따라 차라리 갈라져서 사는 게 낫다는 정서가 미국 사회에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하니까, 캐나다와 접해 있는 동북부의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 서북부의 워싱턴과 오리건, 중북부의 미네소타와 미시간이 오히려 캐나다로 들어가기를 원할 것이라는 등 다소 황당하지만 역사적 배경이 있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은 동북부 북쪽에 캐나다 퀘벡과 접해 있는 주이다. 뉴햄프셔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프라이머리가 처음 열리는 주(州)로 유명하고 버몬트는 진보적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의 출신 주로 알려져 있다. 메인은 대통령이 될 뻔했던 에드먼드 머스키 상원의원을 배출한 주로 유명하다. 현재 버몬트는 인구가 65만 명이고 92%가 백인이고 흑인은 1.3%에 불과하다. 2000년에는 96%가 백인이고 흑인은 0.5%였으나 근래에 아시아계 인구가 늘어서 백인인구 비중이 줄어들었다. 뉴햄프셔 인구는 140만 명인데 백인이 88%이고 흑인은 1.5%에 불과하다. 2000년에는 백인이 96%, 흑인이 0.5%였었으나 근래에 아시아계 인구가 늘어서 백인 비중이 줄어들었다. 메인은 인구가 140만 명이고 백인이 95%, 흑인은 1.2%에 불과하다. 이 세 개의 주는 ‘화이트 스테이트(White State)’, 즉 흑인이 거의 살지 않는 주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남부 흑인들의 대이동은 시카고와 디트로이트, 뉴욕과 보스턴 지역에서 그쳤다. 더 북쪽에 있는 버몬트, 뉴햄프셔, 메인은 겨울이 너무 춥고 대도시가 없어서 남부의 더운 기후에서 살았던 흑인들이 정착하지 못했다.

버몬트에 사는 백인 중 25%는 자기들의 뿌리가 프랑스계이거나 캐나다에 정착했던 프랑스계의 후손(French Canadian)이라고 생각한다. 뉴햄프셔와 메인에 사는 백인의 20%도 자신들을 프랑스계이거나 프랑스-캐나다계라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프랑스어를 잘 하는 주민들이 많았고 지금도 상대적으로 그런 편이다. 국경을 건너가면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퀘백과 문화적 언어적으로 동질성을 느끼는 백인들이 많다는 이야기이다. 이 3개 주에 사는 백인들은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블루칼라 백인들과는 성향이 다르다. 만일에 미국이 트럼프 식의 정치 사회로 흘러간다면 이들은 미국 보다는 지리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가까운 캐나다와 정체성을 더욱 가깝게 느낄 것이다. 특히 버몬트는 1791년에 미국으로 편입되기 전에 한동안 버몬트 공화국으로 독립을 했었다. 당시 버몬트 주민들은 캐나다로 들어갈지, 미국으로 들어갈지를 저울질하다가 미국의 주가 되기로 했기 때문에 그런 역사에 기인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연방국가인 미국에서 주(州)가 탈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헌법에 분명한 조항이 없다. 노예 문제를 두고 논쟁이 붙자 남부 주에서는 주(州)는 연방법률을 무효화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주장(Nullification movement)이 일었고, 그런 분위기에서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 주들은 연방(미 합중국)에서 탈퇴해서 남부 연방을 만들었고 결국 참혹한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후에 링컨 대통령은 통합 차원에서 남부 정치인들을 반역죄로 다루지 않았다. 북부 군대(미 합중국 군, US Army)가 남부 주에서 철수하자 남부에선 비록 패배했을망정 자신들이 정당했다고 주장하는 ‘Lost Cause' 운동이 일었다. 연방대법원은 주가 연방에서 임의로 탈퇴할 수 없다고 판결했으나 남부의 백인들은 북부가 지배하는 연방정부를 오랫동안 심정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실제로 어느 주가 미국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정서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팽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트럼프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북쪽 이웃인 캐나다와 동질성을 느끼는 또 다른 지역은 미국 서북부 고산(高山)지대 캐스케이드 레인지(Cascade Range)와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오리건과 워싱턴이다. 타임지가 언급한 '캐스케디아 공화국(Cascadia Republic)'이 바로 여기다. (계속)

이상돈, 전 중앙대학교 교수